수원주보

수원주보

Home

게시판 > 보기

오늘의 묵상

12월 31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12-31 조회수 : 85

요한1,1-18 
 
주님 은총으로 충만한 한해를 마무리하며... 
 
 
또다시 한해의 끝자락에 서 있습니다.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습니다.
이런저런 고통과 시련의 파도에 힘겨웠던 한해였습니다.
그렇지만 주님 은총으로 충만한 한해였습니다.
비록 이런저런 상처와 결핍, 부끄러움과 회한에도 불구하고 주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젊은 사제 시절이 생각납니다.
도움이 필요한 아동 양육 시설에서 생활할 때였습니다.
불과 유난히 가까이 지냈습니다.
가출한 한 아이들이 마땅히 잘 데가 없다 보니 문구사를 뚫고 들어가 잠을 청했습니다.
한밤중이 되어 기온이 떨어지니, 너무 추웠던지, 불을 피우고 자다가 문구사를 홀라당 태워 먹었습니다.
현장에서 체포된 아이를 빼내느라 상상을 초월하는 합의금을 지출했습니다. 
 
한번은 한 아이가 버린 담배꽁초로 인해 생활 시설 한 층이 홀라당 타버렸습니다.
다행히 아이들이 모두 등교한 후라 인명피해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물건들이 모두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애지중지했던 것들이 자취도 없이 사라지니 그 허탈감이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아이를 향한 분노로 제 마음이 이글거렸습니다.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괴로웠습니다. 
 
괴로워하던 제게 한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인명피해 없는 것이 어디냐? 감사할 줄 알아야지!”
그 순간 원망과 미움의 감정이 순식간에 감사와 찬미의 노래로 뒤바뀌었습니다.
“맞아! 이만하길 다행이지!” 
 
저는 즉시 마음을 바꿔먹고 불난 층 대청소를 시작했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니 사람 부르지 않고 복구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불탄 천장 재료들 잔뜩 싣고 와서 조금씩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고마운 분들이 갑자기 나타나셔서 도배도 해주셨습니다. 
 
뿐만아니라 그 혼란의 순간, 제 머릿속에는 집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잃고 슬퍼하는 난민들,
강제 이주민들, 길거리에서 생활하는 노숙인들의 고통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고통스럽고 부끄러운 순간이었지만, 수도자로서 청빈 서원의 깊은 의미도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깊은 고통을 품위 있고 우아하게 흘려보낼 수 있는 기술도 배웠습니다.
맨 밑바닥에서 다시 한번 새롭게 시작할 힘도 얻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고통에서 길어 올린 은총이었습니다. 
 
무한한 주님의 은총과 축복에 힘입어 우리 모두 다시 한번 한해의 끝자락에 서 있습니다.
새해를 맞이하기 전 불놀이를 제대로 한번 하면 좋겠습니다.
갖은 걱정과 근심, 우울감과 상실감을 주님 성령의 짚단에 꽁꽁 묶어 아무런 미련도 없이 불을 붙여 활활 태워버리면 좋겠습니다. 
 
한해의 마지막 지점에 서서 점점 줄어들고 사라져가는 것에 대해 아쉬워하고 불평불만하기 보다는 주님께서 주신 무한한 은총과 축복에 깊이 감사하며 그분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다.”(요한 1,16)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