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마태 4,12-17.23-25: “회개하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오늘 복음은 세례자 요한이 잡힌 뒤, 예수님께서 갈릴래아로 물러가신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피신하신 것은 단순히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당신의 수난과 죽음은 정해진 때에 이루어질 것이며, 그것은 아버지의 구원 계획 속에서만 완성되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는 제자들에게 유혹의 위험 앞에서 무턱대고 맞서는 것이 아니라, 피할 수 있을 때 피하라는 지혜를 가르치신 행동이기도 하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 장면을 주해하며 이렇게 말한다. “주님께서는 유혹을 두려워하셔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본을 보이시기 위해 피하셨다.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당신이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먼저 보여주신 것이다.”(In Matthaeum Homiliae 14,2) 즉, 예수님은 인간이 유혹을 이겨내도록 길을 열어주시는 스승이시다.
예수님께서 정착하신 곳은 즈불룬과 납탈리 지방, 곧 예언자 이사야가 말한 “큰 빛을 본 백성”(이사 9,1-2)이 사는 땅이었다. 이 지역은 과거 북 왕국의 멸망과 함께 가장 먼저 이방인에 넘어간 지역이자, 어둠과 수치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곳에서 가장 먼저 구원의 빛이 비추게 되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큰 빛”을 이렇게 해석한다. “큰 빛은 바로 그리스도이시다. 그분 안에서 하느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를 빛으로 인도하신다.”(Enarrationes in Psalmos 36,1) 빛이신 그리스도는 단순히 지식의 빛이 아니라, 죄와 죽음의 그림자를 몰아내는 구원의 빛이다.
예수님의 첫 설교는 세례자 요한의 선포와 동일하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17절) 이는 요한의 사명이 예수 안에서 이어지고 성취되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하늘 나라는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새로운 상태를 가리킨다. 성 그레고리오는 이렇게 가르친다. “하늘 나라는 지금도 우리 안에 시작되었으니, 우리가 사랑할 때 그 나라가 우리 안에 세워진다.”(Homiliae in Evangelia 1,17) 하늘 나라는 우리 안에서 현존하는 하느님의 통치이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모든 질병과 고통을 치유하시며,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23절). 이는 그분의 공생활이 세 가지 축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보여줍니다. 말씀의 선포: 무지와 오류에서 해방; 치유의 표징: 육체적 질병뿐 아니라 영혼의 상처 치유; 하늘 나라의 선포: 하느님의 새로운 통치 시작이다. 성 이레네오는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의 영광은 인간이 살아 있는 것이며, 인간의 생명은 하느님을 보는 것이다.”(Adversus Haereses IV,20,7) 곧, 주님의 치유는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구원의 사건이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도 세 가지를 초대한다. 빛으로 나오기: 무지와 죄의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고, 말씀의 빛을 받아들이는 것; 회개하기: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믿고, 하느님의 사랑 앞에 마음을 돌이키는 것; 주님을 따르기: 예수님을 따라 고통 속에서도 그분께 나아가 죄의 용서를 청하는 것이다.
교회 헌장 9항은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인류를 당신의 빛으로 모으시어, 세상의 희망이 되게 하셨다.” 우리 또한 빛이신 그리스도를 따를 때, 세상 속에서 그분의 빛을 반사하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 각자에게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17절) 말씀하신다. 빛이신 그분께 나아가 죄의 용서를 청하자. 그분 안에서 치유와 평화를 얻고, 하느님의 참된 자녀로 살아가자. 그리고 우리 삶이 그분의 빛을 세상에 비추는 거울이 되게 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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