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공현 후 화요일]
마르코 6,34-44
화단에는 가뭄에도 물이 쏟아진다
찬미 예수님!
주님 공현의 신비가 우리 일상에 스며들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혹시 농구 좋아하십니까?
미국 대학 농구의 전설로 불리는 UCLA의 존 우든 감독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이분은 전무후무한 88연승과 10회 우승이라는, 말 그대로 '기적' 같은 기록을 세운 명장입니다.
신입 선수들이 잔뜩 긴장해서 첫 훈련장에 모이면, 명장은 아주 비장한 표정으로 농구공 대신 양말을 나눠줬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자, 양말을 신을 때는 주름이 하나도 잡히지 않게 팽팽하게 당겨 신어야 한다.
그리고 신발 끈은 구멍마다 꽉 조여 매라."
선수들이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천하의 명장이 유치원생도 다 아는 양말 신기를 가르치다니요.
하지만 감독의 철학은 확고했습니다.
"양말에 주름이 잡히면 발에 물집이 생긴다.
물집이 잡히면 뛸 수가 없다.
네가 못 뛰면 팀이 진다."
기적 같은 승리는 화려한 덩크슛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양말을 제대로 펴 신는 그 사소한 '질서'에서 시작된다는 겁니다.
기초적인 질서가 무너지면, 경기라는 거대한 흐름도 무너집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엄청난 기적을 행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빵이 불어난 결과에만 감탄하느라, 그 기적이 일어나기 직전에 예수님께서 하신 아주 중요한 행동을 놓치곤 합니다.
마르코 복음 사가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명령하시어, 모두 푸른 풀밭에 한 무리씩 어울려 자리를 잡게 하셨다. 사람들은 백 명씩 또는 쉰 명씩 떼를 지어 자리를 잡았다."
왜 굳이 배고파 죽겠다는 사람들을 앉히고, 줄을 세우셨을까요? 그냥 빵을 공중에서 뿌리거나,
선착순으로 나눠주면 안 됐을까요?
만약 그랬다면 그곳은 아수라장이 되었을 겁니다.
힘센 사람만 먹고 약자는 밟혀 다쳤겠지요. 그것은 기적이 아니라 폭동입니다.
여기서 '떼를 지어'라는 그리스어 원문은 본래 '화단의 꽃들이 가지런히 심어진 모양'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혼란스런 군중을 아름다운 꽃밭처럼 정돈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질서'가 곧 기적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입니다.
그릇이 준비되지 않으면 은총은 담기지 않고 쏟아져 버립니다.
우리 삶의 현장을 봐도 그렇습니다.
기적은 철저한 질서 위에서 피어납니다.
불과 1년 전이었지요. 2024년 1월 2일, 일본 하네다 공항에서 여객기가 착륙 직후 다른 비행기와 충돌해 화염에 휩싸였습니다.
비행기는 불덩어리가 되어 활주로를 달렸고, 기내는 연기로 가득 찼습니다.
누가 봐도 대참사가 될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승무원들은 고장 난 인터폰 대신 확성기를 들고 외쳤습니다.
"짐을 버리십시오! 짐을 꺼내지 마십시오!"
생사가 오가는 순간, 내 가방을 챙기고 싶은 건 인간의 본능입니다.
그 본능대로 했다면 통로는 막히고 모두가 죽었을 겁니다.
하지만 승객들은 그 두려움 속에서도 무질서를 멈추고 승무원의 지시에 따랐습니다.
비행기가 전소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20분이었지만, 탑승객 379명은 전원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짐을 버리는 질서'가 수백 명의 목숨을 구하는 기적을 만든 것입니다.
어디 인간사뿐이겠습니까. 자연을 보십시오. 꿀벌들이 모아온 꿀은 액체입니다.
그냥 쌓아두면 다 흘러내리고 맙니다.
그래서 벌들은 '육각형'이라는 가장 완벽한 질서의 형태로 집을 짓습니다.
빈틈없고 가장 튼튼한 그 구조 덕분에 벌집은 자기 무게의 30배나 되는 꿀을 저장합니다.
육각형이라는 질서가 없으면, 꿀이라는 풍요는 담길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의 영성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질서는 본래 '두려움'에서 나옵니다.
내 힘으로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삶을 뒤죽박죽으로 만듭니다.
그런 혼돈 속에는 은총이 내리지 않습니다.
구약 성경 판관기에 나오는 기드온을 보십시오. 적군 미디안은 13만 5천 명인데, 기드온의 군사는 고작 300명이었습니다.
전면전, 즉 무질서한 싸움을 하면 전멸이 뻔했습니다.
그때 하느님은 칼 대신 나팔과 빈 항아리, 횃불을 들게 하십니다.
그리고 "내가 하는 대로만 하여라"는 엄격한 행동 수칙을 주십니다.
그들이 약속된 신호에 맞춰 일제히 항아리를 깨뜨리며 질서를 지켰을 때, 적군은 공포에 질려 자기들끼리 칼부림하다 자멸했습니다.
300명의 질서가 13만 명의 무질서를 이긴 것입니다.
이처럼 질서만 잡혀도 기적은 일어납니다.
때로는 하느님께서 누군가를 돕기 위해 가장 먼저 하시는 일이 그의 삶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크림 전쟁 당시의 나이팅게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녀가 야전 병원에 도착했을 때 병사들의 사망률은 42%였습니다.
총상 때문이 아니라 오물과 무질서 속에서 감염되어 죽어갔습니다.
나이팅게일이 한 일은 거창한 수술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청소를 하고, 환자의 침대를 줄 맞춰 정리하고, 환기 시간을 정했습니다.
그리고 사망 원인을 꼼꼼하게 통계표로 만들었습니다.
아수라장이 평화로운 질서의 공간으로 바뀌자, 6개월 만에 사망률이 2%로 급감했습니다.
그녀가 부여한 '질서'가 곧 수천 명을 살리는 '기적'이 된 것입니다.
극한의 상황일수록 이 질서의 힘은 빛을 발합니다.
1914년, 남극 탐험 중 배가 부서져 얼음 위에 고립된 어니스트 섀클턴 대장과 28명의 대원 이야기를 아십니까?
영하 30도의 추위와 고립감은 사람을 미치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때 섀클턴 대장은 엄격한 '루틴'을 만들었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고, 축구를 하고, 머리를 깎게 했습니다.
심지어 유머 시간까지 정해서 웃게 했습니다.
그는 무질서한 감정이 침투하지 못하게 일상을 철저히 통제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634일간 표류했지만 단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전원 생존하여 귀환했습니다.
극한 상황에서 그들을 살린 건 따뜻한 난로가 아니라, 영혼을 지켜주는 차가운 질서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빵을 주시기 전에 먼저 사람들을 앉히셨습니다.
여러분의 삶은 지금 앉아 있습니까, 아니면 서서 우왕좌왕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매주 드리는 이 미사 전례(Liturgy)야말로 우리 삶의 질서를 잡는 가장 거룩한 틀입니다.
전례는 딱딱한 형식이 아닙니다.
무질서한 세상의 소음 속에서 우리 영혼이 흩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섀클턴의 루틴이자, 은총을 담는 벌집입니다.
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유럽이 야만인들의 침략으로 혼돈 그 자체였을 때, 문명을 구한 것은
베네딕토 성인이었습니다.
성인은 그 혼란 속에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는 엄격한 생활 규칙을 세웠습니다. 수도자들은 정해진 시간에 자고, 먹고, 기도했습니다.
그 수도원 담장 안의 평화로운 질서는 암흑시대를 밝히는 등대가 되었고, 그 안에서 유럽의 문명은 다시 꽃피울 수 있었습니다.
질서는 벌써 평화이고, 그 평화가 기적을 초대합니다.
올 한 해, 거창한 계획보다 사소한 질서를 세워보십시오.
존 우든 감독이 양말을 펴 신게 했듯, 아침에 일어나 이불을 개는 것부터 시작하십시오.
정해진 시간에 기도를 바치고, 정해진 시간에 잠자리에 드십시오.
그 단순한 규칙(Regula)이 여러분의 영혼을 육각형 벌집처럼 튼튼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주님께서 주시는 오병이어의 풍성한 은총이, 낭비되지 않고 여러분의 삶이라는 그릇에 가득 담길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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