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새벽에 매일 기도하는 이유
찬미 예수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온 고을 사람들이 환호하며 당신을 붙잡는데도 "다른 고을로 가자"며 매정하게 떠나십니다.
병자들을 고쳐주는 것은 분명 '좋은 일(Good Thing)'이고 보람된 일인데, 왜 굳이 그 성공의 자리를 떠나 낯선 고생길을 자처하셨을까요?
그 이유를 묻기 전에, 우리가 왜 매일 새벽에 일어나 기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부터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미국의 식물학자이자 '땅콩 박사'로 위인전에 등장하는 조지 워싱턴 카버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는 흑인 노예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천재적인 재능으로 당대 최고의 농학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명성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이 그를 스카우트하려 했습니다.
에디슨은 카버에게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액수인 연봉 10만 달러(현재 가치로 수십억 원)를 제안했습니다.
"금액은 당신 마음대로 쓰시오.
최첨단 연구실을 줄 테니 나와 함께 일합시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것은 거절하기 힘든 제안입니다.
부와 명예가 보장된 삶, 내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환경. 이것은 분명 인생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Good Thing)'입니다.
하지만 카버 박사는 그 제안을 단칼에 거절합니다.
그리고 대신 그가 선택한 곳은 앨라배마의 가난한
흑인 학교인 터스키기 연구소였습니다.
그곳은 월급은커녕 실험 장비도 제대로 없어 쓰레기장을 뒤져 병을 주워 써야 하는 열악한 곳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미쳤다고 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그로 하여금 '좋은 꽃길'을 버리고 '옳은 가시밭길'을 가게 했을까요?
비밀은 그의 새벽에 있었습니다.
카버 박사는 매일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훗날 자신의 자서전적인 글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평생 동안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숲으로 들어가 하느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자연은 가장 위대한 스승이며, 남들이 잠든 그 고요한 시간에 하느님은 나에게 그날의 계획과 비밀을 알려주십니다.
만약 내가 에디슨에게 갔다면 돈은 많이 벌었겠지만, 내 동족을 잊어버렸을 것입니다.
나는 내 백성을 살리라는 하느님의 명령을 새벽마다 확인했기에 행복했습니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며 낡은 양복을 입고 지냈지만, 땅콩 하나로 300가지가 넘는 발명품을 만들어내며 남부의 경제를 살려냈습니다.
그의 묘비명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그는 명성에 부를 더할 수 있었으나, 그 둘을 다 마다하고 세상을 위해 봉사하는 것에서 행복과 명예를 찾았다."
'좋은 일'보다 '옳은 일'을 선택했을 때 영혼이 얼마나 기쁜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경영학자 짐 콜린스는 그의 저서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의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좋은 것(Good)은 위대한 것(Great)의 적이다."
수많은 사람과 기업이 실패하는 이유는 그들이 엉망이어서가 아닙니다.
적당히 '좋은 상태'에 만족하고 안주하기 때문입니다.
"이 정도면 됐어", "사람들이 좋아하잖아"라는 안도감이 하느님이 주신 위대한 사명으로 나가는 길을 막아버립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의 환호(Good)를 뿌리치고 떠나신 것은, 인류 구원이라는 위대한 사명(Right)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아버지의 뜻이기에 예수님께는 더없는 행복이었습니다.
역사를 보면 위대한 영혼들은 하나같이 이 '좋은 유혹'을 이겨내고 '옳은 행복'을 맛본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좋은 것을 버리고 고생길을 택한 이들은 불행했을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하와이의 쾌적한 본당을 버리고 나병 환자들의 섬 몰로카이로 들어간 성 다미안 신부님을 보십시오.
결국 그도 나병에 걸려 얼굴이 일그러지고 손가락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하지만 그는 고향의 형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형님, 저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선교사입니다.
제 몸은 썩어가지만 제 마음은 천국을 맛보고 있습니다."
건강한 육체라는 '좋은 것'을 포기하고 병든 형제들과 하나 되는 '옳은 일'을 택했을 때, 그는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의 정점을 찍었습니다.
그렇다면, 눈앞의 달콤한 '좋은 일'을 뿌리치고 고독한 '옳은 일'을 선택하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요?
왜 우리는 기도를 해야만 할까요?
예수님은 그 답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예수님의 힘은 '새벽 기도'에서 나왔습니다. 사람들의 환호성이 귀를 멀게 하기 전에, 성공의 달콤함이 마음을 무디게 하기 전에, 주님은 새벽같이 일어나 하느님 아버지와 독대하셨습니다.
우리가 새벽에 기도하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좋은 일'보다 '옳은 일'을 선택했을 때 맛보았던
그 행복을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 몸은 본능적으로 편안하고 좋은 것만 찾게 됩니다.
하지만 기도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면, 고생스러워도 옳은 일을 하는 것이 영혼을 얼마나 춤추게 하는지 기억해 낼 수 있습니다.
마더 테레사 수녀님은 쉴 새 없이 밀려드는 환자들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사람들은 "기도 시간을 줄이고 그 시간에 환자를 더 돌보는 게 효율적이고 좋은 일 아닙니까?"라고 물었습니다.
하지만 마더 테레사는 단호했습니다.
그녀와 수녀들은 매일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1시간 이상 성체 조배를 했습니다.
"우리는 사회복지사가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 한복판에 있는 관상 수도자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습니다."
새벽에 예수님의 사랑을 충전하지 않고 일만 했다면, 그들은 금방 지쳐서 짜증 내는 노동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새벽 기도가 있었기에 그들은 50년 넘게 미소를 잃지 않고 옳은 일을 하는 행복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북전쟁 당시 수많은 사람이 빨리 전쟁을 끝내기 위해 적당히 타협하라고 압박했습니다.
그것이 피를 덜 흘리는 '좋은 일'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링컨은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성경을 펴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나는 내 지혜가 부족함을 너무나 잘 알기에, 압도적인 확신을 가지고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갈 곳이 그곳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새벽마다 하느님의 뜻을 물었기에 그는 '적당한 타협'이라는 유혹을 뿌리치고, '노예 해방'이라는 옳은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발목을 잡고 있는 '좋은 일'은 무엇입니까?
"이 정도면 됐어, 남들도 다 이렇게 살아"라는
안락함이 혹시 하느님이 부르시는 '위대한 사명'과 그 안에서 누릴 참된 행복을 가로막고 있지는 않습니까?
안락한 곳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새벽 4시의 숲으로 나가야 합니다.
몸은 편하지만 영혼이 시들어가는 곳을 떠나야 합니다.
하지만 내 힘으로는 못 떠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새벽'이 필요합니다.
하루 중 단 10분이라도 좋습니다.
세상의 소음을 끄고 하느님과 단둘이 만나는 '외딴곳'을 마련하십시오.
우리가 매일 기도하는 이유는 의무감 때문이 아닙니다.
좋은 일보다 옳은 일을 선택했을 때 찾아오는 그 벅찬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행복을 아는 사람은 기도를 멈출 수 없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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