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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16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1-16 조회수 : 49

복음: 마르 2,1-12: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신 사람의 아들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의 한 집에 계시자 사람들이 문 앞까지 가득 모여들었다. 군중이 가득 차 있던 그 집 안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시고, 병자에게 자비를 베푸신다. 그러나 이 사건의 중심은 단순한 병의 치유가 아니라 죄의 용서이다. 

 

중풍 병자의 친구들은 군중 때문에 예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없자, 지붕을 뜯고 그를 예수님 앞에 내려놓았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영적 가르침을 받는다. 우리의 기도와 신앙생활 안에도 수많은 잡념과 세속적 분주함이 군중처럼 몰려와 예수님을 향한 시선을 가로막을 때가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은 포기하거나 다른 길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지붕을 벗겨내는 용기”, 곧 말씀을 향한 집요한 열정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병자에게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5절) 하신다. 치유보다 먼저 선포된 것은 용서이다. 예수님께서 단순히 병을 고치는 의사가 아니라, 하느님의 권능으로 죄를 용서하시는 구세주이심을 드러내신 것이다. 율법 학자들은 분개하며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7절) 항의한다. 그러나 그 사실이 복음의 핵심이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참 인간이시며 동시에 참 하느님이시다. 그분 안에서 하느님의 용서가 드러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말한다. “병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생겨나고, 치유도 또한 마음 깊은 곳에서 시작된다.”(Enarrationes in Psalmos, Ps. 41) 죄는 인간의 내적인 중풍과 같아서 우리를 하느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깊은 곳까지 들어와 용서하시고 고쳐 주신다. 또한 이 기적은 개인적 신앙의 결실이라기보다 공동체적 믿음의 열매이다. 병자는 자신의 믿음이 아니라, 그를 데리고 온 이들의 믿음을 보시고 치유되었다. 우리 신앙도 그렇다. 부모, 친구, 교회의 전통, 공동체의 기도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께로 나아가고, 주님의 은총을 체험한다. 

 

오늘 우리는 서로의 신앙을 지붕처럼 덮고 있는 장애물을 벗겨 주어야 합니다. 즉, 기도와 희생으로, 격려와 사랑으로 다른 이들이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사명이며, 우리 각자가 수행해야 할 신앙인의 책임입니다. 내 안에서 예수님께 가는 길을 막는 “군중 같은” 잡념들은 무엇인가? 나는 다른 사람의 믿음을 통하여 주님께 이끌림을 받았던 순간을 기억할 수 있는가? 오늘 나는 내 이웃을 위해 어떤 ‘지붕을 벗겨낼’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일으켜 새 삶을 살도록 하시는 참된 치유자이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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