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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21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1-21 조회수 : 99

유명한 성지로 성지 순례를 가면 늘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사람이 북적이는 곳이라도 아주 한가한 장소가 있습니다. 어디일까요? 바로 성당 안입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감실 앞에는 늘 한가합니다. 기도하는 곳에 순례 온 사람들이지만, 정작 기도는 하지 않고 사진 찍기에만 전념합니다. 그 모습을 보며 요즘의 우리 신앙의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느님 주변을 서성이기는 하지만 정작 하느님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 우리가 아닐까요? 가까이에 있을 뿐 가까이하지 않습니다. 성당에 다닌다고는 말하지만,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옛날에 복사도 서고, 레지오도 했다고 소리 높여 말하지만, 지금은 성당 다닌 지 너무 오래되었다고 말합니다. 천주교 신자라고는 하지만, 그에게서 예수님의 모습을 전혀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냥 가까이에 있을 뿐’에 멈춰서는 안 됩니다. 적극적으로 주님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자기 의지를 세워야 그 안에서 많은 의미와 깨달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구경만 한다고 실력이 늘까요? 아닙니다. 주님은 구경의 대상이 아닙니다. 당연히 우리는 구경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가까이 그리고 함께 해야 우리의 신앙도 커집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나옵니다. 손이 오그라들었다는 것은 삶의 능력을 상실하고, 생계가 위협받아 사회적으로 위축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영적으로는 하느님을 향해 뻗지 못하고 자기 안으로 굽어버린 인간의 처지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고통받는 이웃이 있는데, 사람들은 연민 대신 율법 규정을 어기는지 감시하는 심판관의 눈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모습은 그냥 주님 곁에 가까이에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가운데로 나오게 합니다. 이는 고통받는 이를 공동체의 중심에 두시는 행위이며,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시키시는 선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마르 3,4)라고 질문하십니다.


당시에는 생명이 위급한 경우가 아니면 안식일에 치료 행위는 금지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해도 되느냐, 안 되느냐’의 규정문제가 아닌 ‘선이냐, 악이냐’라는 본질의 문제로 전환하십니다. 즉, 율법의 근본정신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을 행할 능력이 있음에도 규정을 핑계로 방관하는 것은 악을 저지르는 것과 같다고 하십니다.


사람들은 입을 열지 않습니다. 그들의 완고한 마음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노기를 띠시고 그들을 둘러보시며 “손을 뻗어라.”(마르 3,5)라고 말씀하십니다. 어쩌면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닐 것입니다. 오그라든 영혼을 가진 사람들을 향한 명령이기도 합니다. 주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는 오그라든 영혼을 쫙 펴고, 당신 곁에 가까이 오라는 것입니다.


그냥 가까이가 아니라, 진정으로 함께하는 우리는 되어야 할 때입니다.


오늘의 명언: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늘 슬픔을 품는 일이기도 합니다(와카마쓰 에이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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