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주변 사람들
오늘 복음 말씀에 의하면, 예수님의 친척들은 예수님의 행적에 매우 부정적인 시각을 보였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추정에 앞서, 용어 하나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흔히 ‘친척들’로 번역하는 그리스어 hoi par’ autou는 직역하면 ‘그분에게서 오는 이들’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가족들’ 또는 ‘친척들’ 외에 ‘친구들’ 또는 ‘추종자들’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혈연관계를 넘어 예수님과 관련을 맺고 있는 사람들, 아니면 혈연관계를 전제한다고 하더라도 그야말로 ‘먼 친척들’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긍정적 평가에는 친척임을 내세우면서도, 부정적 평가에는 ‘나 몰라라’ 하거나 오늘 복음에서처럼 예수님을 ‘미쳤다고 생각하여 붙잡아’ 제거하려는 사람들입니다.
굳이 부연하자면, 이 장, 곧 마르 3장의 끄트머리에 언급되는 “예수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는 분명히 구분되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3,35) 하신 예수님의 말씀, 예수님의 참 가족은 어떤 사람들로 구성된 공동체인지를 가르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 의미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다음 주 화요일 복음 말씀 참조). 이해하기 힘든 하느님의 위대한 뜻을 그대로 수용하여 구세주를 이 세상에 낳으셨을 뿐만 아니라, 한 생을 아드님과 함께한 성모 마리아가 이 참 가족의 으뜸가는 구성원이 되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갈릴래아를 중심으로 복음 전파의 길에 들어선 이래,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에 관하여 바리사이들, 그 가운데서도 핵심 세력인 율법 학자들은 줄곧 이의 제기로 적대감을 숨기지 않았던 반면, 군중들은 권위 있는 가르침과 놀라운 행적 앞에서 감탄을 표현합니다. 예수님은 사명 수행 초기부터 여러 가지 이유로 당신을 거부하는 자들과 당신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자들 사이에 서 계십니다. 혈연이나 지연 또는 학연 관계 등으로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예수님의 참 가족이 되기 위해서는 그분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실행에 옮기는 자세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명 수행이 좀 더 깊어지고 넓어짐에 따라, 참 가족 구성원들과 그 밖의 사람들의 모습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일행이 음식을 들 수조차 없을 정도로 모여드는” 군중과, “그분이 미쳤다고 생각하여 붙잡으러 나서는” 지인들의 모습이 그렇게 대조적이지 않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세례성사를 통하여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말씀대로 살겠다고 다짐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됩니다. 부족하기 그지없는 우리를 당신 자녀로 삼아주셨음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면, 이 마음을 구체적인 행동을 통하여 드러내야 하는 일, 끝까지 주님을 믿고 따르는 삶으로 표현해나가야 하는 일 또한 당연한 일입니다.
이해타산적인 신앙생활을 털어버리고 우리 삶의 의미가 오로지 주님의 말씀 안에, 주님이 걸어가신 길 위에 있음을 다시금 고백하며, 신앙인으로 힘차게 달려 나가는, 값진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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