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마르 3,31-35
한결같은 겸손과 순종, 믿음과 봉사의 달인, 성모님!
인간 존재라는 것, 참으로 신비스럽습니다.
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부모 입장에서 자신을 꼭 빼닮은 한 생명체가 이 세상에 나왔으니 얼마나 대견하고 사랑스럽겠습니까?
그야말로 애지중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사랑 덩어리입니다.
무럭무럭 자라나는 아이는 부모의 기쁨이요 보람이요 훈장입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가장 예쁜 어느 순간, 딱 거기서 멈춰주었으면 좋겠는데, 폭풍 성장을 한 아이가
어느덧 중2가 되고, 고2가 되고, 대학을 졸업하고, 그렇게 사랑스럽던 아이, 항상 품에 착 안기던 아이는 어디로 가고, 눈초리도 사나워지고 매사가 삐딱한 괴물로 변합니다.
이제 아이는 더이상 부모의 자랑거리가 아니라 애물단지로 변합니다.
이런 인생의 우여곡절을 성모님께서도 똑같이 겪으셨습니다.
성모님의 생애를 묵상해보니 참으로 행복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행복의 원천은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은혜롭게도 성모님은 구세주 하느님을 당신의 태중에 셨습니다.
몸소 그를 낳으셨습니다.
오랜 세월 그를 당신 품에 안고 고이고이 길렀습니다.
무럭무럭 성장해나가는 소년 예수를 바라보며 참으로 대견스럽고 자랑스러우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전에는 양면이 있습니다.
빛이 있으면 반드시 그림자가 있기 마련입니다.
구세주의 어머니가 됨으로 인한 남모를 고초와 아픔과 상처가 왜 없었겠습니까?
공생활을 위해 예수님께서 출가(出家)하신 이후, 성모님은 어떻게 사셨을까요?
‘아! 이제 내가 할 일 다 했다.
고생할만큼 했으니, 이제 발 좀 쭉 뻣고 편히 쉬자.’하면서, 동네 아주머니들과 계모임도 하시고, 관광도 다니고 그러셨을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출가 이후에도 성모님의 안테나는 항상 예수님에게로 가 있었습니다.
‘오늘은 대체 어디서 무엇을 할까? 끼니나 챙기고 다니는지? 누가 힘들게 하는 사람은 없을까?’
늘 노심초사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런 성모님에게 누군가가 소식을 전해줍니다.
“자네 아들이 미쳤다는군.
유다 지도층 인사들과 사사건건 대립하면서, 지금 목숨이 경각에 다다랐다네.”
그 소식을 전해 들은 성모님께서는 뜬눈으로 밤을 꼬박 지새우신 후, 서둘러 예수님께서 머무시는 곳으로 달려오신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본 한 사람이 예수님께 ‘아무리 바쁘셔도, 어머니가 오셨다는데, 한번 나가봐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여쭈었습니다.
둘러서 있던 사람들은 다들 예수님께서는 ‘그래요? 어머니가 나 때문에 걱정되셔서 그 먼 길을 오셨군요.
나가 보겠습니다.’ 라고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님의 말씀은 의외였습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마르 3,33)
뜻밖의 반응에 성모님께서는 속이 많이 상하셨겠지만, 기도하고 인내하시면서, 예수님 말씀에 담긴 진의(眞意)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십니다.
이렇게 성모님의 한평생은 신비스럽고 심오한 존재, 예수님, 그리고 그분이 던지시는 영적 말씀을 이해하고 헤아리기 위해 끝도 없이 노력하고 또 노력하신 나날이었습니다.
성모 신심과 관련해서 항상 경계해야 할 위험요소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겸손과 순종의 여인, 믿음과 봉사의 여인으로서의 성모님 모습은 뒷전에 둔 채 끝도 없는 한 개인의 욕구를 지속적으로 채워주는 기적의 여인으로서 성모님만을 추구해서는 곤란합니다.
다른 무엇에 앞서 성모님께서 예수님의 인류 구원 사업에 어떻게 협조하셨는지를 유심히 바라봐야겠습니다.
성모님께서 갖은 고통과 시련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유혹 앞에서 어떻게 기도했는지,
자신의 신앙을 어떻게 성장시켜나갔는지를 눈여겨봐야겠습니다.
성모님의 가장 큰 업적은 한평생 하느님의 말씀을 잘 경청했고, 그 말씀을 마음 속 깊이 간직했고,
그 말씀을 매일의 삶 속에서 꾸준히 실천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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