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 어머니냐?”라는 질문은 “나를 낳아다오”라는 절규입니다
찬미 예수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아주 파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당신을 찾아온 어머니와 형제들을 두고, 주위에 둘러앉은 제자들과 군중을 가리키며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이다.”
우리는 흔히 이 말씀을 듣고 “아, 하느님 뜻을 따르면 예수님의 가족이 되는구나!” 하고 쉽게
넘어갑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분명히 ‘어머니’라고도 하셨습니다.
형제나 누이는 같은 피를 나눈 동등한 관계지만, 어머니는 다릅니다.
어머니는 생명을 잉태하고, 뼈가 으스러지는 산통을 겪고, 자신의 피를 변하게 만든 흰 젖을 먹여 키우는 존재입니다.
과연 죄 많은 인간인 우리가, 심지어 남자인 신자들까지도 감히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될 수
있을까요? 아니, 어쩌면 예수님은 우리가 반드시 당신의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고 호소하고 계신 것은 아닐까요? 저는 감히 말씀드립니다.
인간 삶의 완성은, 내 안에 하느님을 잉태하고
그 하느님을 세상에 낳아 기를 때 이루어진다고 말입니다.
이집트 카이로에는 ‘자블린’이라 불리는 거대한 쓰레기 매립지 마을이 있습니다.
악취가 진동하고 파리 떼가 들끓는 이곳에 ‘마마 매기(Mama Maggie)’라 불리는 한 여인이 있습니다.
본명은 매기 고브란. 그녀는 본래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 대학 컴퓨터공학 교수로 재직하던
엘리트였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이 마을을 방문했다가, 쓰레기 더미를 뒤져 먹을 것을 찾는 아이들을 보고 큰 충격을 받습니다.
그녀는 그 길로 화려한 교수직과 보장된 미래를 버리고 그 악취 나는 곳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녀는 매일 3만 명이 넘는 아이들의 머리를 감겨주고, 짓무르고 더러워진 발을 씻겨줍니다.
그녀가 아이들의 발을 씻기며 귀에 대고 속삭이는 말은 이것입니다.
“너는 왕자님이야. 너는 공주님이야. 하느님이 너를 정말 사랑하신단다.”
쓰레기 취급을 받던 아이들은 그녀의 손길과 이 말 한마디에 자존감을 회복하고 눈동자가 빛나기
시작합니다.
콥트 정교회 신자인 그녀는 비록 수녀님도 아니고 아이들의 생물학적 엄마도 아니지만, 그곳의 모든 아이는 그녀를 ‘마마(엄마)’라고 부릅니다. 죽어가던 영혼을 씻겨 ‘하느님의 자녀’라는 새로운 신분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영적 산파’이자 ‘어머니’의 역할입니다.
이 거룩한 모성은 여성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바오로 사도의 서간을 보면 충격적인 고백이
나옵니다.
그는 독신 남성이었지만,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편지를 쓰며 이렇게 절규합니다.
“나의 자녀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형성되실 때까지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다시 해산의 고통을 겪습니다.” (갈라 4,19)
바오로 사도는 신자들이 복음을 버리고 율법주의로 돌아가려는 모습을 보며, 단순히 화를 내거나 훈계하는 스승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배가 끊어지는 듯한 ‘해산의 고통(Odinō)’을 느꼈습니다.
그 영적 산통을 기꺼이 감내하며 눈물로 호소했기에, 그는 엄격한 사도를 넘어 신자들의
영적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남자가 어머니가 되는 유일한 길은, 길 잃은 형제를 위해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될 수 있을까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모든 신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신비를 명쾌하게 설명합니다.
“우리가 거룩한 사랑과 순수하고 진실한 양심으로 하느님을 우리 몸과 마음에 모실 때 우리는 그분의 어머니가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표양을 보여 다른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어줌으로써 거룩한 행위로 그분을 낳을 때 우리는 그분의 어머니가 됩니다.”
이것은 비유가 아닙니다.
실재입니다.
우리가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어 그 사람이
“아, 하느님은 살아계시는구나!”라고 느끼게 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의 마음속에 ‘작은 예수’를
낳아준 것입니다.
내 행위가 곧 예수의 탄생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젖을 물리는 이들이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음을 확신합시다.
이것이 내가 고귀해지는 유일한 길입니다.
소화 데레사의 어머니이자 루이 마르탱의 아내인 성녀 젤리 마르탱은 9명의 자녀를 낳았으나 4명을 어린 나이에 잃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시누이에게 보낸 편지에는 놀라운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자녀를 주실 때, 저는 그저 아이들을 안고 즐거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아이들을 ‘하느님께 바치기 위해’ 낳았습니다. 저는 하늘나라의 시민을 낳고 기르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자녀를 자신의 소유물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로 키워 다시 하느님께 돌려드리는 것을
유일한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요? 살아남은 다섯 딸은 모두 수녀가 되었습니다.
한 집안에서 교회 학자인 성인(데레사)이 나왔고, 부모인 루이와 젤리 마르탱 부부 역시 2015년에 부부로서 함께 시성되었습니다.
셋째 딸 레오니 또한 시복 절차가 진행 중입니다.
어머니 젤리 마르탱이 자녀를 단순히 ‘내 딸’이 아니라 ‘하느님을 품은 그릇’으로 키워냈기에,
그 가정은 지상의 가족을 넘어 천상의 성인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하느님의 아버지이고 어머니가 될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례성사를 통해 영적인 자궁과 젖을 받았습니다. 만약 우리가 평생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누군가를 전교하지 못하고, 죽어가는 영혼에게 젖을 물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마치 건강한 몸을 가지고도 자녀를 낳지 않는 불임의 삶을 사는 것과 같습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부끄러운 존재가 될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둘러보며 간절히 묻고 계십니다.
“누가 내 어머니냐? 누가 나를 이 삭막한 세상에 다시 태어나게 해 주겠느냐?”
이 질문은 “제발 나를 낳아다오”라는 주님의 절규이자 초대입니다.
이번 한 주간, 바오로 사도처럼 해산의 고통을 감내하고, 마 조드처럼 형제에게 은총의 젖을
물려주십시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감히, 그러나 자랑스럽게
‘그리스도의 어머니’라 불리는 은총을 누리시길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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