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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28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1-28 조회수 : 110

 마르코 4,1-20 

 

이 교리 회복하지 못하면 교회는 끝납니다. 

 

 

찬미 예수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농부이신 하느님께서는 인색함 없이 모든 땅에 씨앗을 뿌리십니다.

길바닥에도, 돌밭에도, 가시덤불에도, 그리고 좋은 땅에도 말씀은 똑같이 내립니다.

그런데 왜 어떤 곳에서는 싹조차 트지 못하고, 어떤 곳에서는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을까요? 

 

문제는 씨앗(말씀/성체)이 아니라 땅(우리 마음)에 있습니다.

우리는 미사 때마다 똑같이 성체를 모십니다. 어떤 분에게 성체는 그저 배고픔을 달래지도 못하는 작은 밀가루 조각일 뿐이지만, 어떤 분에게는 생명을 거는 구원의 주님이십니다. 

 

왜 오늘날 교회가 힘을 잃었을까요?

왜 수많은 신자가 성체를 모시고도 변하지 않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삼구(三仇)'라는 교리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세속, 육신, 마귀. 이 세 가지 원수가 우리 눈을 가리고 있는데, 그것을 그대로 둔 채 하느님을 보려 하니 보일 리가 없습니다. 

 

이것은 사제가 지어낸 말이 아닙니다.

창세기 3장에서 뱀이 하와를 유혹할 때 쓴 전략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와가 열매를 보니 '먹음직하고(육신의 탐욕), 보기에 탐스럽고(눈의 탐욕), 사람을 슬기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지라(이생의 자랑)'라고 했습니다.

사도 요한도 요한 1서 2장에서 이 세상에 있는 것은 "육신의 탐욕과 눈의 탐욕과 이생의 자랑"뿐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377항, 2514항) 역시 이 탐욕이 원죄의 결과이며 영적 투쟁의 대상임을 명확히 가르칩니다. 

 

이 삼구라는 거대한 소음이 멈추지 않는 한, 진리의 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이 진실을 뼛속 깊이 체험한 한 남자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블라블라블라" 속에 묻힌 거룩함 2013년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영화 '더 그레이트 뷰티(La grande bellezza)'가 있습니다. 

 

주인공 '젭 감바르델라'는 로마 상류 사교계의 제왕입니다.

그는 젊은 시절 딱 한 권의 걸작 소설을 쓴 뒤, 40년 동안 글을 쓰지 않고 매일 밤 옥상 펜트하우스에서 파티를 엽니다.

이곳은 삼구의 전시장입니다. 

 

샴페인과 마약이 강물처럼 흐릅니다(육신의 탐욕). 명품을 휘감은 여자들이 나신에 가깝게 춤을 추며 서로를 탐합니다(눈의 탐욕).

유력 정치인과 예술가들은 서로 자기가 잘났다고 떠들어대며 위선을 떱니다(이생의 자랑).

젭은 그 모든 쾌락의 중심에서 왕처럼 군림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65번째 생일날 밤, 광란의 파티 한가운데서 그는 갑자기 견딜 수 없는 '영적 구토감'을 느낍니다. 

최고급 샴페인에서 시궁창 냄새가 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을 유혹하는 여자들의 몸짓이 정육점에 걸린 고기덩어리처럼 비릿하고 역겹게 느껴집니다.

지성인들이 떠드는 고상한 대화는 그저 "블라블라블라(Bla bla bla)"라는, 아무 의미 없는 소음으로 고막을 찢습니다.

그는 그 화려한 욕망의 배설물들 속에서 독백합니다. 

 

"이 모든 것은 그저 소음일 뿐이다. 블라블라블라... 다들 떠들어대지만 아무도 듣지 않는다.

이 수다 뒤에는 무엇이 있지? 아무것도 없다. 그저 똥 같은 공허함뿐이다."

그는 자신이 평생 쌓아 올린 쾌락의 탑이 사실은 거대한 감옥이자 쓰레기장임을 깨닫습니다.

그 역겨움이 그를 파티장 밖으로 밀어냅니다. 그는 로마의 새벽 거리를 걷다가, 104세의 성녀(수녀님)를 만납니다. 

 

화려한 파티복을 입은 젭과, 앙상하게 마른 성녀. 성녀는 그에게 묻습니다.

"왜 글을 쓰지 않나요?" 젭은 대답합니다. "아름다움을 찾지 못해서요." 그러자 성녀는 말합니다.

"뿌리는 중요한 거예요."

젭은 세상의 욕망(삼구)이 썩어 문드러지는 냄새를 맡고 나서야 비로소, 침묵 속에 숨어 있는

'위대한 아름다움(The Great Beauty)', 곧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삼구에 대한 구토가 진리를 받아들이는 가장 좋은 거름이 된 것입니다. 

 

저 역시 신학교에 들어오기 전, 젭처럼 세상이 '블라블라블라'로 여겨지는 순간을 겪었습니다.

한때는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경영학을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군대를 제대하고 다시 듣는 경영학 수업은 왠지 모르게 구역질이 날 것 같았습니다.

이윤 추구라는 명목하에 사람을 수단으로 이용하고, 끊임없이 더 가지라고 부추기는(눈의 탐욕) 그 논리들이 영혼을 갉아먹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세상의 소음이 싫어지자, 비로소 주님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신학교에 가서 성체 조배를 할 때였습니다.

성체 안에 계신 주님께서 제 마음에 뚜렷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너는 나에게 많은 것을 주었니? 나는 네게 다 주었다." 

 

그리고 "나는 포도나무요 너는 가지다"라는 말씀으로 저를 붙잡아 주셨습니다.

그때 저는 성체조배를 평생의 사명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성체가 밀가루 떡이 아니라, 나를 위해 생명을 다 내어준 하느님으로 보이는 순간, 제 인생의 밭은 완전히 갈아엎어졌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날 교회가 힘을 잃은 이유는, 우리가 한 손에는 십자가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돈과 쾌락을 쥐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두 가지 사랑이 두 가지 도시를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자기를 사랑하여 하느님을 멸시하는 사랑(삼구)은 지상의 도시를 만들고, 하느님을 사랑하여 자기를 멸시하는 사랑은 천상의 도시를 만듭니다. 

 

우리는 밭의 돌과 가시덤불, 즉 삼구에 대해 '싫음'과 '구역질'을 느껴야 합니다.

이 과정은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에게도 똑같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로 부와 명예의 정점에 섰습니다.

남부러울 것 없는 귀족이었고, 세상 모든 사람이 그를 찬양했습니다.

하지만 50세 무렵, 그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에서 시체 썩는 냄새를 맡았습니다. 

 

"나의 삶은 멈췄다. 숨을 쉴 수도 없었다.

돈도, 작가로서의 명성도, 여자도 나를 구원하지 못했다.

이 모든 욕망의 끝은 결국 죽음뿐이지 않은가." 

 

그는 자신의 서재에 자살하기 위한 밧줄을 숨겨둘 정도로 절망했습니다.

세상의 성공이 그를 옭아매는 감옥임을 뼈저리게 깨달은 것입니다.

그가 그 화려한 욕망들을 구토하듯 뱉어내고 배설물처럼 여기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가난한 시골 농부들의 단순한 믿음이었습니다.

욕망을 비워낸 그 텅 빈 자리에 하느님의 빛이 들어온 것입니다.

그는 『참회록』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나 자신(욕망)을 죽임으로써 비로소 살았다.

욕망의 찌꺼기를 걷어내자 그분께서 내 안에 들어오셨다."

삼구가 주는 쾌락이 사실은 구역질 나는 '블라블라블라'였음을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

진리를 말하는 것은, 돼지 목에 진주를 걸어주는 것과 같습니다.

돼지는 진주보다 꿀꿀이죽을 더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내 안의 욕망이 역겨워질 때까지 기도합시다.

그리고 교회를 다시 살리기 위해 이 교리가 다시 회복될 수 있도록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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