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참 행복의 역설
오늘 전례는 예수님의 산상설교, 곧 참 행복(마카리오이, μακάριοι)에 관한 말씀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3절)라는 선언은 세상의 상식과는 반대되는 역설적 진리를 드러내고 있다. 세상은 힘 있고 부유하며, 성공한 이들을 행복하다 말하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가난하고, 온유하며, 의로움 때문에 박해받는 이들을 행복하다고 말씀하신다. 이는 단순한 심리적 위로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새로운 가치 체계를 선포하는 혁명적 선언이다.
2. 구약의 예언과 연결된 가난한 이들
제1독서 스바니야 예언자는 주님의 날에 “가난하고 겸손한 이들”(스바 3,12)이 주님의 이름에 피신할 것이라 말한다. 이 ‘가난한 이들’은 단순히 재산이 없는 자들이 아니라, 하느님께 의탁하는 사람들이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아나윔(עֲנָוִים)’이라는 표현은, 자신을 낮추고 하느님께만 희망을 두는 사람들을 뜻한다. 예언자 즈카르야 역시 메시아를 “가난하고 겸손하게 오시는 임금”(즈카 9,9)으로 예고했다. 바로 이 ‘가난’이 구원 역사의 열쇠이다.
3. 예수님의 새로운 율법
예수님께서는 산 위에서 군중을 가르치신다. 이는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율법을 받던 사건을 상기시킨다. 교부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한다. “옛 법은 두려움으로 주어졌으나, 새 법은 사랑으로 주어졌다.”(De sermone Domini in monte I,1) 즉, 산상설교는 외적인 규율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속에 새겨진 사랑의 법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역시 참 행복을 “그리스도인 삶의 헌법”이라고 불렀다. 그는 “가난은 단순한 결핍이 아니라, 하느님께 대한 완전한 의탁이며, 교만을 버리는 첫걸음”(참조: In Matthaeum Homiliae XV)이라고 강조했다.
4. 바오로 사도의 역설: 약함 속에 드러나는 힘
제2독서에서 바오로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강한 자가 아니라, 약한 자들을 택하셨음을 상기시키고 있다(1코린 1,26-31). 이것은 인간의 자랑을 무너뜨리고,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총임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자랑하려는 자는 주님 안에서 자랑하라”(1코린 1,31)는 말씀은, 참 행복의 첫 번째 선언, 곧 마음이 가난한 사람만이 하느님을 자기 힘과 재산이 아닌 유일한 보물로 삼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5.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시각
공의회는 사목 헌장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은 가난과 박해를 통해 하느님 나라의 기쁨을 증거해야 한다.”(38항)고 가르친다. 또한 교회는 “가난한 이들 가운데서 특히 그리스도의 얼굴을 발견해야 한다.”(교회 8)고 천명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영적 태도에 머물지 않고, 사회적 차원에서 가난하고 억눌린 이들과 연대하며, 정의와 평화를 실현해야 한다는 요청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6. 오늘 우리에게 주는 도전
나는 마음으로 가난한 사람인가? 재물이나 명예, 자기 고집에 집착하지 않고 하느님께 나 자신을 온전히 맡기고 있는가? 나는 받은 은총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 있는가? 가난은 빼앗김이 아니라, 나눔을 통해 하느님 안에서 더 큰 부유함을 얻는 길이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3절) 이 선언은 단순한 약속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이루어져야 할 현실이다. 우리가 교만과 집착을 버리고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할 때, 참 행복이 시작된다.
결론적으로, 참 행복은 소유가 많고 적음에 있지 않고, 가난한 정신으로 하느님께 의탁하며, 받은 것을 나누는 삶에 있다. 그러할 때 우리도 “주님 안에서 자랑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며, 세상 속에서 하느님 나라의 기쁨을 증거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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