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녘, 부부가 하루 일을 마치고 두 손 모아 감사의 기도를 바치고 있습니다. 어떤 그림이 생각나십니까? 밀레의 ‘만종’입니다. 밀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가 분명합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의 그림이 인정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랫동안 가난에 쪼들렸던 화가였던 것입니다. 가난으로 힘들어하는 그에게 친구가 찾아와 “자네의 그림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라면서 3백 프랑을 주었습니다. 가난한 그에게 그 돈은 더할나위없이 귀했고, 무엇보다 자기 그림이 드디어 인정받았다면서 자부심과 희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그림에 더 몰두할 수 있었습니다.
몇 년 후, 그의 작품은 화단의 호평을 받으며 비싼 가격에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그림을 팔아줬던 친구에게 감사함을 전하기 위해 그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친구의 집에 3백 프랑에 팔렸다는 자기 그림이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자기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직접 사준 것임을 이때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친구의 우정과 배려가 지금의 밀레가 있게끔 해준 것입니다. 사랑은 이렇게 커다란 변화를 불러옵니다. 그런데도 이 사랑이 별것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저 자기가 받을 사랑에만 집중하고, 자기 이익에 중심을 둡니다. 이때 과연 변화가 가능할까요?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변화는 무엇일까요?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구원의 길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마태 5,13)라고 말씀하십니다. 소금처럼 되라는 것이 아니라, ‘소금이다’라면서 우리의 정체성을 정하신 것입니다. 소금의 기능은 첫째, 부패 방지입니다. 당시에는 냉장 시설이 없었기에 음식의 부패를 막는 유일한 수단이었습니다. 이처럼 죄와 타락으로 부패해 가는 세상 속에서 영적인 방부제 역할을 하라고 하십니다.
둘째, 맛을 내는 기능입니다. 소금 없는 음식이 과연 맛있을까요? 이처럼 무미건조하고 절망적인 세상에서 복음의 기쁨을 세상에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마지막은 정화와 계약입니다. 구약에서 소금은 제물을 정화하는 데 사용했고, 변하지 않는 약속을 상징했습니다. 이는 하느님과의 계약을 세상에 증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음 이어지는 빛의 비유도 그렇습니다. 빛의 본질은 드러남과 다른 사람을 위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태 5,14)라고 하시면서, 그리스도인임을 세상에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등경 위의 등불처럼 우리의 신앙이 나만을 위한 위안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와 이웃을 비추기 위한 봉사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십니다.
이로써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6)를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나를 드러내기 위함이 아닌, 하느님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모습이 제1독서의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너의 빛이 새벽빛처럼 터져 나오는 것‘(이사 58,8)입니다.
나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주변 사람들에게 살맛을 줄까요? 아니면 상처를 줄까요? 살맛을 주는 모습으로 하느님을 세상에 드러내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원하는 진정한 변화가 우리 삶 안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세상에 위대한 사람은 없다. 단지 평범한 사람들의 위대한 도전이 있을 뿐이다(윌리엄 프레데릭 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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