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 6,53-56
하느님 자녀가 되면 모든 것에서 하느님 옷 자락이 보입니다
찬미 예수님!
오늘 복음은 참으로 벅찬 장면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겐네사렛 호숫가에 내리시자마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곧바로 알아보고, 온 지방을 뛰어다니며 병자들을 데려옵니다.
그들의 청은 딱 하나였습니다.
“스승님, 제발 저 병자들이 스승님의 옷자락 술에라도 손을 대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손을 댄 사람마다 모두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흔히 기도할 때 이렇게 투덜거립니다. “하느님, 도대체 어디 계십니까?
한 번만 짠 하고 나타나시면 제가 성인이 될 텐데요.
제발 로또 번호라도 한 번 불러주시든가, 꿈에라도 나와주세요.”
그런데 정말 하느님이 안 보이시는 걸까요? 문제는 하느님이 숨어 계신 게 아니라, 우리 눈에 ‘백내장’이 끼어 그분의 옷자락을 ‘옷자락’으로 알아보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답답한 영적 까막눈인지 보여주는 영화가 있습니다.
짐 캐리가 주연한 ‘브루스 올마이티’입니다. 주인공 브루스는 억세게 운이 없는 날, 빗길 운전을 하며 하늘에 대고 삿대질을 합니다.
“하느님, 제발 저에게 신호를 좀 주세요! 당신이 살아있다는 증거를 좀 보이란 말입니다!”
바로 그 순간, 그의 차 앞으로 공사 트럭이 지나갑니다.
트럭 뒤에는 큼지막한 경고판들이 번쩍거립니다. ‘CAUTION(주의)’, ‘STOP(정지)’, ‘DEAD END(막다른 길)’.
이보다 더 확실한 신호가 어디 있습니까?
하지만 흥분한 브루스는 어떻게 합니까?
“비켜! 이 똥차야! 내 앞길 막지 말고!”라며 트럭을 추월해 버리고는, 계속해서 “왜 신호를 안 주시냐”고 징징거리다 결국 전봇대를 들이받습니다.
오래된 우화인 ‘홍수와 보트’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홍수가 나서 지붕 위에 고립된 신자가 구조대원이 보낸 보트도 거절하고, 헬기도 거절합니다. “하느님이 직접 구해주실 겁니다!”
결국 물에 빠져 죽은 그는 천국에서 따집니다.
“왜 안 구해 주셨습니까?” 하느님께서 기가 차서
대답하십니다.
“야 이 녀석아, 내가 보트도 보내고 헬기도 보냈는데 네가 안 탔잖아!
내가 그럼 수영복 입고 내려가야 속이 시원하겠냐?”
보트와 헬기, 교통 표지판은 투박해 보이는 하느님의 옷자락이었습니다.
우리 곁에 있는 사제, 의사, 가족의 잔소리 같은 평범한 수단들을 거부하고, 천사가 나팔 불며 내려오는 ‘직통 계시’만 바라는 것은 신앙이 아니라 오만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옷자락을 알아볼 수 있을까요? 먼저 ‘정체성’이 바로 서야 합니다.
나는 빛을 사랑하는 존재,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비유를 들어보겠습니다.
빛을 사랑하는 존재가 캄캄한 동굴에 갇혔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는 어둠을 묵상하지 않습니다.
그의 눈은 본능적으로 바늘구멍만 한 틈새라도 빛이 스며 들어오는 곳을 필사적으로 찾습니다. 그리고 그 빛을 향해 기어갑니다.
왜냐하면 그는 빛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믿는 사람은 세상이라는 어두운 동굴 속에서도, 이웃의 작은 선행, 스쳐 지나가는 바람, 심지어 고통스러운 사건 안에서도 스며 들어오는 하느님의 빛(옷자락)을 발견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냥 보이는 게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보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카이스트 김대식 교수는 AI 시대에 인간이 살아남기 위한 조건으로 ‘타인을 인간으로 바라보는 능력’을 꼽았습니다.
역사적으로 끔찍한 학살이 일어났을 때, 가해자들은 피해자를 ‘인간’이 아닌 ‘벌레’나 ‘도구’로 규정했습니다.
내가 나 자신을 하느님의 자녀로 존중하지 않으면 타인도 존중할 수 없고, 결국 짐승이 되고 맙니다.
결국 신앙은 ‘숨은그림찾기’입니다.
세상이라는 그림 속에서 하느님의 옷자락을 찾아내는 게임입니다.
이 게임의 치트키는 바로 ‘희망, 믿음, 사랑’입니다.
기자가 “어떻게 그 징그러운 환자들을 만집니까?”라고 묻자 마더 데레사 수녀님은 답했습니다.
“이분들은 변장하고 오신 예수님입니다.
저는 지금 예수님의 상처를 닦아드리고 있습니다.”
수녀님은 의도적으로 환자들의 고름 속에서 하느님의 옷자락을 찾아내셨습니다.
그것을 바랐고, 믿었고,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보려고 했고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본인도 거룩해졌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진정으로 그분을 만나기를 바라고 있습니까?
진정으로 바란다면, 이제 눈을 크게 뜨고 찾아야 합니다.
나를 괴롭히는 직장 상사의 잔소리, 속 썩이는 자식의 등짝,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꽃 한 송이...
이 모든 것이 우리 곁을 스치고 지나가는 하느님의 옷자락입니다.
오늘 하루, 똥파리처럼 남의 흠집만 찾아다니며 “하느님은 없다”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대신 꿀벌처럼 형제의 마음속에 숨겨진 작은 꽃을 찾아내십시오.
사랑하려 하면 모든 것에서 하느님 옷자락이 보입니다.
그 옷자락을 꽉 잡으십시오.
그러면 평화의 성령께서 오실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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