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속에서도 기꺼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기적입니다!
오늘도 바리사이들은 무례하게도 예수님께 표징을 요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해도 해도 너무한 무례한 요구에 깊이 탄식하십니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마르 8,12)
사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의 황당한 요구를 들어주는 것 식은 죽 먹기였습니다.
순식간에 불벼락을 내리는 것, 다양한 하늘의 이상징후를 보이는 것, 예수님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의 요구에 굴복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들의 불신앙을 신랄하게 꾸짖으십니다.
그들의 불신과 완고함에 큰 슬픔을 느끼시며, 그들을 뒤로 하고 떠나가십니다.
혹시라도 오늘 우리도 예수님께 특별한 징표를 집요하게 요구하는 것은 아닐까요?
얼토당토 않은 엉뚱한 기적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나는 털끝만큼의 노력도 하지 않은채 손을 놓고 있으면서, 하느님 편의 기적만을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진정한 기적은 우리가 매일 봉헌하는 성체성사 안에 다 있습니다.
참된 기적은 우리가 정기적으로 들어가는 고백소 안에서 늘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참된 기적은 우리가 얼마나 먼저 변화하고 쇄신되고자 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이 시대, 기적이 무엇이겠습니다.
하느님의 한량없으신 자비에 힘입어 이 아침, 우리가 다시금 눈떴다는 것이 기적입니다.
이 아침, 우리가 그 누군가의 부축 없이 우리 자신의 두 발로 서있다는 것이 기적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또다시 볼 수 있다는 것이 기적입니다.
매일 우리가 봉헌하는 성체성사야말로 기적중의 기적입니다.
그 크신 하느님께서 이 비천한 우리 인간과 합일한다는 것, 이것보다 더 큰 기적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어깨에 메어진 멍에의 무게로 휘청거리는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하느님, 살며시 그 멍에를 벗겨주시는 하느님, 그분 안에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것이 기적입니다.
무인도처럼 고독과 외로움에 시달리는 우리에게 매일 다정한 친구로 다가오시는 예수님, 그분 사랑 안에 하루를 기꺼이 견뎌내는 것이 기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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