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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2월 20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2-20 조회수 : 95

복음: 마태 9,14-15 

 

우리의 단식이 보다 진정성 있는 단식이 되기 위하여 

 

 

사순시기만 되면 돌아가신 선교사 신부님 얼굴이 떠오릅니다.

항상 넉넉한 웃음과 뼈있는 농담으로 후배들을 즐겁게 해주시던 분이셨습니다. 

 

한번은 신부님께서 사순시기를 시작하며 새싹 같은 젊은 형제들에게 훈화 말씀을 하셨는데,

저도 마침 그 자리에 앉아 있었기에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신부님께서 이렇게 운을 띄우셨습니다. 

 

“우리 살레시안들은 사순시기에 더 잘 먹어야 합니다.” 

 

저도 당시 수련자들의 선생 역할을 하고 있던 중이라, 신부님의 말씀에 살짝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뒤따라 나오는 말씀에 안심을 하였습니다. 

 

“더 잘 먹고, 대신 더 많이 사랑하면 됩니다.

더 자주 아이들에게 다가가고, 더 많이 그들을 참아주고, 더 많이 인내하고, 더 기쁘게 헌신하는 것, 그것이 우리 살레시안들에게 참된 단식입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단식하지만,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 기도와 단식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오늘 독서 말씀과 어찌 그리 일맥상통하는지 깜짝 놀랄 정도입니다.

“보라, 너희는 너희 단식일에 제 일만 찾고, 너희 일꾼들을 다그친다.

보라, 너희는 단식한다면서 다투고 싸우며 못된 주먹질이나 하고 있다.

이것이 내가 좋아하는 단식이냐? 사람이 고행한다는 날이 이러하냐?

제 머리를 골풀처럼 숙이고, 자루 옷과 먼지를 깔고 눕는 것이냐?”(이사 58, 3-5) 

 

또 다시 사순 시기를 맞아 우리는 교회 권고에 따라 단식과 금육을 실천합니다.

교회는 왜 우리에게 단식하라고 강조할까요?

어찌 보면 단식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강제로 억제시키는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자연스레 고통이 따를 것입니다.

허기로 인한 표시가 얼굴에 드러날 것입니다.

심기가 날카로워진 나머지 작은 일로 이웃과 싸우기도 할 것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그것은 단식도 뭣도 아니다, 차라리 그런 단식은 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고 가르칩니다.

애써 단식을 했다면, 그 단식이 이웃 사랑, 하느님 사랑이라는 열매를 맺어야 마땅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불의한 결박을 풀어 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이사 56,6-7) 

 

이번 사순절, 단식제와 금육제를 실천할 때 마다, 대체 왜 단식하고 금육하는지?

그 이유를 먼저 한번 헤아려보고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단식이 보다 진정성 있는 단식,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단식이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겠는지 고민해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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