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마태 6,7-15: “기도할 때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신다. 단순한 말의 나열이나 형식적 반복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친밀한 관계 안에서 드려지는 기도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신다. 바로 우리가 매일 바치는 ‘주님의 기도’이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라고 가르치신다. 이는 단순히 호칭이 아니라,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결합한 이들이 누리는 특권이다. 성 치프리아노는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아버지를 부르게 하셨다. 이는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깨닫고, 우리의 기도가 하느님의 귀에 상달되는 것을 확신하기 위함이다.”(De orat. Dom. 9) 따라서 주님의 기도는 하느님을 찬미하는 동시에, 우리의 정체성을 새롭게 하는 기도이다.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9절)라는 청원은 하느님을 더 거룩하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안에서 그분의 거룩함이 드러나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설명한다. “하느님의 이름은 이미 거룩하시다. 그러나 우리가 거룩하게 살지 않으면, 그 이름이 모독당한다.”(In Matth. Hom. 19,6)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10절) 기도는 단순히 미래의 하늘나라만을 뜻하지 않는다. 교회는 이것이 이미 지금 여기서 시작된 하느님의 다스림을 청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우리는 그분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우리 삶과 역사 속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한다.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11절) 여기서 ‘일용할’(ἐπιούσιον)이라는 희귀한 단어는 교부들에게 깊은 묵상의 주제가 되었다. 성 예로니모는 이를 “미래의 빵, 곧 영원한 생명의 빵”으로 해석했고, 성 치프리아노는 “성체성사, 곧 구원의 양식”으로 보았다. 따라서 이 청원은 단순히 물질적 양식만이 아니라, 성체 안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하는 은총을 청하는 것이다. 사순절에 성체와 더 깊이 결합하는 것은 곧 주님의 기도를 사는 길이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12절) 여기서 주님은 우리의 용서와 하느님의 용서를 긴밀히 연결하신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한다. “너는 네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서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는가? 입술로 드리는 기도가 네 가슴을 때리고 있지 않은가?”(Serm. 58,9) 용서는 타인을 위한 것이면서 동시에 나를 위한 것이다. 진정한 용서는 내 마음을 하느님께 열어, 그분의 자비를 내 삶에 흘려보내는 행위이다.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13절) 교부들은 여기서 유혹을 피할 힘과 악의 세력으로부터의 보호를 함께 청한다고 보았다. 성 오리게네스는 “우리가 악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지켜주실 것을 청하는 겸손의 표현”이라 해석했다. 마지막 청원은 앞선 모든 기도의 요약이다. 하느님을 우리의 보호자로 모시고, 악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확신하는 믿음의 고백이다.
‘주님의 기도’는 단순한 암송이 아니라, 그 자체가 신앙의 길이다. 사순절을 살아가는 우리는 이 기도의 정신을 구체적으로 살아내야 한다. 하느님을 참된 아버지로 모시는 삶, 성체 안에서 양식을 얻는 삶, 형제를 용서하고 화해하는 삶, 악에서 벗어나 거룩함을 지향하는 삶이다. 주님의 기도를 입술로만이 아니라, 삶으로 바치는 기도가 될 때, 우리는 부활의 빛을 맞이할 준비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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