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루카 6,36-38: 남을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단순한 권고가 아니라,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라는 초대이다. 자비는 하느님의 가장 고유한 속성이다. 성 그레고리오는 자비를 이렇게 정의한다. “자비란 타인의 비참함을 우리 마음 안에서 함께 아파하는 것이다.”(Moralia in Iob 10,30)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이 자비를 세상 속에서 드러내야 한다.
예수님께서 “남을 심판하지 마라.”(37절)라고 하신 말씀은 단순히 잘못을 눈감아주라는 뜻이 아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주석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심판하지 말라는 것은 결코 죄를 책망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업신여기며 교만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뜻이다.”(Homilia in Matthaeum 23,2) 우리는 형제의 잘못을 고쳐 주되, 교만한 심판자가 아니라, 사랑의 훈계자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37-38절)라고 하신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기도와 자선, 용서를 연결하며 이렇게 말한다. “기도에는 두 날개가 있다. 자선과 용서다. 이 두 날개로 기도는 하늘로 날아오른다.”(Enarrationes in Psalmos 85,7) 용서와 자선은 단순히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기도를 하느님 앞에 올려 보내는 힘이 된다.
교리서는 이렇게 가르친다. “용서는 하느님 사랑의 신비에 깊이 참여하는 것이며, 우리가 이 사랑을 나누는 만큼 하느님께도 용서받는다.”(2840항) 또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비의 얼굴”(Misericordiae Vultus)에서 말한다. “용서는 하느님 마음의 가장 뚜렷한 표징이다.”(9항) 따라서 용서는 단순히 도덕적 행위가 아니라, 하느님의 본성을 드러내는 성사적 증거이다.
사순 시기는 우리가 받은 자비를 세상에 흘려보내는 때이다. 우리는 미움과 보복의 유혹을 버리고, 하느님의 자녀답게 용서를 선택해야 한다. 우리는 가난한 이들의 곡간이 되어, 가진 것을 나누고 베풀어야 한다. 우리는 자비로우신 아버지를 닮아, 사랑의 얼굴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주님께서는 약속하신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38절)
사순 시기, 우리의 기도가 하늘에 닿기를 원한다면, 용서와 자선이라는 두 날개를 펼쳐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참으로 자비로운 아버지를 닮은 자녀가 되고, 주님의 파스카 신비에 참여하는 은총을 풍성히 누리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마태 5,7)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