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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3월 5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3-05 조회수 : 50

 [사순 제2주간 목요일] 
 
복음: 루카 16,19-31: 아브라함이 라자로를 품에 안고 있었다. 
 
오늘 복음은 자주색 옷을 입고 호화롭게 살던 부자와 그의 대문 앞에서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라도 배를 채우려 했던 가난한 사람 라자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주님의 말씀은 단순한 이야기나 도덕적 교훈이 아니라, 영원한 운명을 결정짓는 선택의 진지함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복음은 부자가 도둑질하거나 살인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의 잘못은 라자로의 곤궁을 보면서도 외면한 것이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꾸짖는다. “가난한 이를 돕지 않는 것은 단순한 인색함이 아니라, 그를 죽이는 죄이다. 굶주린 이를 방치하는 것은 살인과 다르지 않다.”(Homiliae in Lazarum, Hom. 2,5) 개들조차 라자로의 상처를 핥으며 그를 동정했지만, 부자는 그보다도 더 무자비했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자비의 결핍, 곧 하느님의 마음을 닮지 못한 인간의 완고함이다. 
 
아브라함은 부자에게 말한다.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놓여 있다.”(25-26절) 이 구렁은 하느님이 임의로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선택한 삶이 만든 결과이다. 성 그레고리오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자비를 거부하면, 스스로 심판을 준비하는 것이다. 지금 나누지 않은 것은 저세상에서 돌려받을 길이 없다.” (Homiliae in Evangelia, Hom. 40,3) 
 
부자는 마지막으로 라자로를 자기 형제들에게 보내 달라고 청한다. 아브라함은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29절)라고 답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주석한다. “율법과 예언자들의 말씀을 외면한 자는, 설령 죽은 자가 부활하여 경고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Sermo 113,4) 실제로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셨지만, 많은 이들은 여전히 믿지 않았다. 신앙은 기적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받아들이는 겸손한 마음에서 오는 것이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너의 대문 앞 라자로는 누구인가?” 가족 안에서, 직장 안에서, 공동체 안에서 외면당하고 있는 이는 누구인가? 우리가 가진 재물과 시간, 재능을 통해 그들의 필요에 응답하고 있는가? 교리서도 이렇게 가르친다. “하느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에게 특별한 사랑을 가지신다. …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은 하느님 나라의 증거이다.”(2443-2449항) 
 
부자의 죄는 사치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랑의 부재였다. 라자로의 고통을 보고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순 시기는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하고, 가진 것을 나누며, 자비의 삶으로 회개하는 때이다. 우리의 기도와 단식이 참되려면 반드시 자선과 함께 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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