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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3월 7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3-07 조회수 : 3

 [사순 제2주간 토요일] 

 

복음: 루카 15,1-3.11-32: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되찾은 아들의 비유’, 즉 ‘탕자의 비유’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자비가 얼마나 크고 무한한지를, 이 비유를 통해 드러내신다. 작은아들의 방탕과 굶주림, 아버지의 포옹과 용서, 그리고 큰아들의 시기와 분노는 오늘 우리 모두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다. 작은아들은 아직 아버지가 살아계심에도 유산을 요구한다. 이는 아버지를 죽은 이로 여긴 것과 같은 불효다. 성 암브로시오는 이렇게 말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에게서 떠나는 이는 자기 고향을 버리고 이방 땅으로 들어가는 것이다.”(Expositio Evangelii secundum Lucam, VII, 229) 곧, 하느님을 떠난 자는 어디서도 안식을 얻지 못하고 굶주림 속에 놓이게 된다. 

 

작은아들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자신이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18절)라고 고백한다. 그때 회개가 시작된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설명한다. “지체하지 않고, 따져 묻지도 않고, 오직 입맞춤과 포옹뿐이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자비이다.”(Homiliae in Lucam, Hom. 2) 아버지는 아들의 죄를 폭로하지 않고, 사랑으로 덮으신다. 하느님의 용서는 책망보다 먼저 다가오는 자비의 포옹이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세 가지 선물을 준다. 가장 좋은 옷은 세례로 입혀진 의로움의 옷, 반지는 아들의 신분 회복, 신발은 자유인의 삶을 상징한다. 그리고 살진 송아지는 바로 그리스도의 희생, 곧 성찬례의 은총을 가리킨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해석한다. “살진 송아지는 그리스도이시니, 우리가 영적 잔치를 즐기도록 그분이 희생되셨다.”(Sermo 112, 2) 회개는 단순한 도덕적 변화가 아니라,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여정이며, 교회의 성사 생활 안에서 새로운 잔치에 참여하는 것이다. 

 

큰아들은 매일 아버지와 함께 있었음에도 아버지의 마음을 알지 못했다. 그는 아버지 집을 의무의 장소로 살았지, 잔치의 기쁨으로 살지 않았다. 아버지와 함께 사는 것 자체가 기쁨의 잔치인 것을 알지 못하고 아들이 아닌 종첢 의무감에서 설았다. 성 그레고리오는 큰아들을 이렇게 해석한다. “그는 시기한다. 왜냐하면,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아들이 아니라, 종처럼 두려움으로만 섬겼기 때문이다.”(Homiliae in Evangelia, 34,9) 곧, 하느님과 늘 함께 있으면서도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여전히 종과 같은 마음으로 머물 수 있다. 

 

이 비유는 우리의 삶을 잘 비추어 준다. 아버지를 떠나 방탕에 빠진 작은아들의 모습, 회개와 용서의 은총을 경험하는 되찾은 아들의 모습, 시기와 닫힌 마음을 드러낸 큰아들의 모습이다. 우리는 이 세 가지 모습 사이를 오가며 살아간다.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아버지의 끝없는 기다림과 먼저 달려오시는 자비다. 사순 시기, 우리 모두 작은아들처럼 겸손히 “아버지, 저는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고백하며, 아버지의 집, 잔치로 돌아가자. 그곳에서 하느님 아버지께서 이미 준비하신 살진 송아지, 곧 그리스도의 성체성사를 통해 기쁨의 잔치에 참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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