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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3월 10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3-10 조회수 : 18

[사순 제3주간 화요일] 
 
복음: 마태 18,21-35: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는 “형제가 제게 잘못하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21절)라고 묻는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22절)라고 대답하신다. 이는 단순한 수학적 계산이 아니라, 용서의 무한성을 뜻한다. 주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완전히 용서해 주셨듯이, 우리 또한 서로를 끝없이 용서해야 함을 가르치신다. 주인의 빚 탕감 이야기는 바로 이 무상의 은총과 그에 합당한 삶의 태도를 보여 준다. 
 
초대 교부들은 이 복음을 깊이 묵상하며, 용서가 그리스도인의 존재와 직결된다고 강조하였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말한다. “하느님께서 사람을 용서하셨는데, 너는 동료를 용서하지 않겠느냐? 자비를 입은 자가 잔혹한 자로 드러나는구나.”(Homilia LXI in Matthaeum) 성 치프리아노는 주님의 기도에 대한 강론에서 이렇게 강조한다. “우리 죄의 용서를 청해야 하지만, 우리가 먼저 용서하지 않으면 그 용서는 우리에게 주어질 수 없다.”(De Oratione Dominica, 23) 성 아우구스티노는 형제를 용서하는 마음을 잃은 자는 결코 하느님의 자비를 받을 수 없다고 말한다. “네가 용서하지 않는 한, 네 죄도 남아 있다. 왜냐하면, 너에게도 용서되지 않기 때문이다.”(Sermo 114) 이 교부들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준다. 곧, 용서는 선택이 아니라, 구원에 필수적인 길이라는 것이다. 
 
교회도 이 진리를 반복하여 가르쳐 왔다. 교리서는 이렇게 가르친다.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의 마음이 형제를 사랑하도록 기꺼이 열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그 마음속에 들어올 수 없다.”(2840) 또한 “용서는 제자들의 공동체 생활의 근본 조건이다. … 그것은 성령의 불타는 사랑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가장 높이 오르는 산봉우리이다.”(2845항) 즉, 용서는 단순한 인간적 덕행이 아니라, 성령의 은총에 뿌리박힌 신적 행위라는 것이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거울과 같다. 나는 정말로 내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는가? 아니면, 용서받은 은총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붙잡고 있지는 않은가?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은 곧 나를 지옥 같은 감옥에 가두는 행위이다. 반대로 용서는 나와 상대방 모두를 해방시키며, 하느님의 자비를 온전히 체험하게 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일만 탈렌트의 빚에서 해방시켜 주셨다. 그 은총을 입은 우리가 백 데나리온에 불과한 형제의 잘못을 붙잡고 있다면, 주님의 가르침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삶이 될 것이다. 오늘,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여야 한다.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3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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