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4주일]
복음: 요한 9,1-41: “어둠이 빛을 이기지 못하였다.”
1. 빛과 어둠의 대립
오늘의 전례는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빛과 어둠의 대립을 주제로 삼는다. 요한 복음은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요한 1,5)라고 선언하며, 하느님의 구원 행위를 ‘빛의 도래’로 묘사한다. 이 빛은 단순한 지식의 빛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친교 안에서만 볼 수 있는 진리의 빛이다. 교리서는 이렇게 가르친다. “그리스도는 세상의 참된 빛이시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을 알고, 인간 자신을 이해하며, 삶의 의미를 깨닫는다.”(2466항)
2. 복음의 핵심: 태생 소경의 치유와 신앙의 여정
요한 복음 9장은 태생 소경의 치유 사건을 통해 단순히 시력을 회복하는 기적이 아니라, 믿음의 눈이 열리는 여정, 즉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구원 과정을 상징한다.
1) 보지 못함과 신앙의 시작
소경은 처음부터 ‘빛’을 본 적이 없다. 이는 인간이 원죄로 인해 영적 시력을 잃은 상태를 상징한다. 그가 주님께 온 것은, 곧 믿음을 향한 첫걸음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그 눈먼 사람은 인간 본성 전체를 상징한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을 보지 못하는 소경으로 태어나며, 그리스도의 손길로만이 시력을 되찾을 수 있다.”(Tractatus in Ioannem 44,1)라고 한다. 그리스도께서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으로 보내신 행위는 새 창조의 행위이다. 창세기에서 하느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빚으신 것처럼(창세 2,7), 예수께서는 새 인간, 곧 믿음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 인간을 만드신다. 교리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 창조가 시작된다. 세례로 우리는 어둠에서 빛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진다.”(1214항)라고 한다.
2) 실로암의 물: 세례의 상징
예수님께서 눈먼 이를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어라.”(7절)라고 하신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실로암’은 “파견된 자”라는 뜻으로, 성부께서 파견하신 메시아, 곧 예수 자신을 가리킨다. 따라서 실로암의 물은 단순한 세정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총을 상징하는 세례의 물이다. 예루살렘의 성 치릴로는 말한다. “그대는 실로암에 내려가 눈을 씻는다. 그것은 그리스도께 내려가는 것이다. 실로암의 물은 단순한 물이 아니라, 성령의 은총으로 생명을 주는 물이다.”(Catecheses Mystagogicae II,1) 세례를 통하여 인간은 눈을 뜨고 빛의 자녀가 된다. 바오로 사도는 말한다. “여러분은 한때 어둠이었지만, 이제는 주님 안에 있는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에페 5,8)
3) 신앙의 성장: “예수”에서 “주님”으로
치유받은 사람의 신앙은 점진적으로 성숙해 간다.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소?”(11절) ― “예수님이라는 분이” ― 인간적 인식 → “당신은 그를 어떻게 생각하오?”(17절) ― “예언자이십니다.” ― 예언자적 인식 → “그분이 어디서 왔는지 아느냐?”(33절) ― “하느님에게서 오신 분입니다.” ― 신앙적 확신 → 예수님을 만난 후(38절) ― “주님, 저는 믿습니다.” ― 구원의 고백이 나온다. 이 최종 고백 “주님, 저는 믿습니다.”(38절)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 선언이다. 그는 단순히 시력을 얻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의 얼굴을 본 사람이 되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를 이렇게 표현한다. “그는 먼저 육의 눈을 열고, 그다음 영의 눈을 떴다. 진흙으로 바른 눈은 잠시 어두웠지만, 신앙의 눈은 영원히 빛났다.”(Tractatus in Ioannem 34,9)
4) 어둠 속의 자들: 영적 맹인의 심판
이에 반해 바리사이들은 빛을 거부한 자들, 곧 영적으로 눈이 먼 사람들의 표상이다. 그들은 “우리는 잘 본다.”(41절)라고 주장하지만,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이 세상에 심판하러 왔다. 보지 못하는 이들은 보고, 보는 이들은 눈먼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39절) 이 심판은 외적인 형벌이 아니라, 진리 앞에서의 자기 드러남이다. 빛을 거부하는 자는 이미 자신을 어둠 속에 두는 것이다. 교리서는 이 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리스도의 심판은 인간의 마음을 드러낸다. 그분은 빛으로 오셨지만, 빛을 거부하는 자는 스스로 심판을 받는다.”(678항)
3. 신앙은 ‘본다.’는 행위
그리스도교 신앙은 ‘믿는다.’는 것과 동시에 ‘본다.’는 행위다.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은 단순한 지적 동의가 아니라, 존재 전체로 빛을 인식하는 능력이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말한다. “믿음은 어떤 어둠 속의 시각이다. 그것은 아직 완전한 빛이 아니지만, 영원한 빛을 향한 시선이다.”(Summa Theologiae II-II, q.1, a.4 ad 3) 세례를 받은 신자는 단순히 눈을 뜬 존재가 아니라, 빛을 반사하는 존재로 세상의 빛(마태 5,14)으로 부름을 받아, 세상의 어둠에서 진리의 증인으로 살아가야 한다.
4. 결론: 빛의 자녀로 살기
오늘 복음은 우리 각자의 영적 자화상이다. 우리는 모두 태생 소경처럼 빛을 잃은 존재로 태어나지만, 그리스도의 은총 안에서 눈을 떠 하느님을 보는 사람으로 부름을 받았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설교한다. “그리스도를 본다는 것은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분의 뜻을 행함으로써 그분을 드러내는 것이다.”(Homiliae in Ioannem 56,2) 사순절은 우리 각자가 빛과 어둠 사이에서 결단을 내려야 하는 때이다. 그리스도를 ‘세상의 빛’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어둠 속에 머무를 것인가? 우리의 응답이 구원과 심판을 가른다. 그분 안에서 눈을 뜬 이만이 참된 생명과 자유를 누릴 것이다. “잠자는 사람아 깨어나라. 죽은 이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를 비추시리라.”(에페 5,14)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