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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3월 18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3-18 조회수 : 46

[사순 제4주간 수요일] 
 
복음: 요한 5,17-30: “아들도 살리고 싶은 사람들은 살릴 것이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아버지와의 친밀한 일치를 드러내시는 장면이다.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17절)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이 단순한 인간적 차원이 아니라, 하느님의 창조와 구원의 역사에 직접 참여하는 일임을 드러낸다. 예수님은 스스로 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아들이 보고 그대로 행하신다(19절)고 하신다. 여기에는 두 가지 진리가 드러난다. 첫째, 예수님은 종처럼 단독으로 일하는 분이 아니라, 아버지와의 사랑의 친교 안에서 순명하는 아들이라는 점이며, 둘째, 아버지께서 주신 생명을 주는 권능을 아들도 공유하시며, 이는 곧 예수님의 신성을 드러내는 선언이다. 성 아타나시우스는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도 똑같이 하신다. 아들은 아버지보다 못한 분이 아니라, 모든 것에서 아버지와 동등하다.”(Orationes contra Arianos II,18)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21절) 죽은 이를 살리는 권능은 오직 하느님께만 속한 것이지만, 예수님께서도 이 권능을 가지고 계시다. 이는 단지 라자로와 같은 육체적 부활에 국한되지 않고, 믿음을 통하여 주어지는 영원한 생명을 뜻한다. 성 이레네오는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그분은 당신 안에 생명을 가지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그를 믿는 모든 이에게 생명을 주신다.”(Adversus Haereses IV,5,2) 
 
예수님은 단순히 생명을 주실 뿐 아니라, 심판자로서 오신다. 그러나 그 심판은 두려움의 심판이 아니라, 믿는 이에게 이미 주어지는 구원이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이는 이미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24절) 성 암브로시오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감이며, 불신은 이미 스스로 심판을 받은 것이다.”(De Spiritu Sancto I,17) 
 
예수님께서는 끝에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내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기 때문이다.”(30절) 우리도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삶으로 부르심을 받았다. 아버지와 아들이 완전히 일치하여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듯, 우리 또한 성령 안에서 그분의 뜻에 일치된 삶을 살아야 한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정체성을 보여 준다. 아버지와 하나이신 하느님의 아드님, 생명과 심판의 주님이시다.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믿고 받아들일 때, 이미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는 은총을 누리게 된다. 따라서, 우리도 그리스도처럼 아버지의 뜻에 순명하며, 받은 생명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삶을 살아가도록 초대받고 있다. 이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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