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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3월 18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3-18 조회수 : 92

[사순 제4주간 수요일] 
 
복음: 요한 5,17-30 
 
오늘 우리도 신성모독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큽니다! 
 
 
혹시라도 지금까지 이 세상 살아오시면서 누군가로부터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을 받아본 적이 있습니까?
실제로 살의(殺意)를 지니고 달려드는 누군가를 겨우 피해 달아나본 기억이 있습니까? 
 
누군가가 내게 살의를 지니고 있다는 것, 그런 상황에 맞닥뜨리고 있다는 것 참으로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의 목숨을 빼앗아버리려고 작심하고 있다는 것은, 엄청난 공포와 깊은 상처,
큰 트라우마를 남기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는 주변에 둘러서 있는 유다인들로부터 살기를 느끼십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에게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하고 말씀하셨다.
이 때문에 유다인들은 더욱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다.(요한 5,17-18) 
 
유다인들은 대체 왜 예수님에게 돌을 던져 죽이려고 했을까요?
이유는 ‘신성모독죄’였습니다.
그들은 메시아로 오신 구세주 하느님을 자신들의 눈으로 똑똑히 보면서도 그분을 끝끝내 거부했습니다.
“당신은 사람이면서 하느님으로 자처하고 있소.” 
 
유다인들은 끝끝내 예수님에 대한 신원 파악에 실패했습니다.
그저 깡촌 나자렛에서 성장한 별 볼 일 없는 예언자겠지, 생각했습니다.
유다인들이 그간 보여주신 예수님의 일거수일투족, 말씀 한 마다 한 마디에 조금만 집중했더라면, 그분 안에 깃들어있는 신성(神性)을 파악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지니고 있었던 고리타분한 율법주의와 그릇된 신앙관으로 인해 끝까지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알지 못했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신성모독죄를 저지르신 것이 아니라 유다인들이 신성모독죄를 저질렀던 것입니다. 
 
우리도 살아가다 보면 신성모독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많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때 그렇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분의 역할, 그분의 존재 이유, 그분의 신원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려는 노력을 쉬지 않고 계속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언제나 우리 삶 한가운데 현존하시며 살아 숨 쉬는 분이 아니라, 그저 2천 년 전의 역사 속에 잠시 등장했다 사라진 예언자 정도로 여길 때, 우리 역시 신성모독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우리의 헛된 망상이나 허무맹랑한 현세적 기대를 지속적으로 충족시켜주는 분 정도로만 생각할 때, 우리 역시 신성모독죄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인류와 세상의 구원을 위해 보내주신 외아들이요, 메시아,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늘 고백해야겠습니다.
그분은 하느님 아버지와 하나이며, 언제나 그분과 일치하고 계시며, 하느님 그분 자체라는 진리도
늘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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