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5주일]
복음: 요한 11,1-45: “라자로를 살리시다.”
1. 사순 여정의 절정: 죽음을 넘어 생명으로
사순절의 복음들은 점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를 드러낸다. 사마리아 여인에게는 “생수를 주시는 분”(요한 4장)으로, 태생 소경을 치유하시며 “세상의 빛”(요한 9장)으로, 그리고 오늘 라자로의 부활에서는 “생명을 주시는 분”으로 계시된다. 물과 빛은 모두 생명의 표징이며, 이 모든 상징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다. 그분은 단지 생명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25절)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의 현존을 자신 안에서 계시하신다. 교리서는 이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참으로 ‘생명의 주님’이시다. 그분 안에서 죽음은 의미를 잃고, 생명이 새로운 형태로 시작된다.”(1002항) 사순 시기의 여정은 단순히 고행과 슬픔의 시간이 아니라, 죽음을 통하여 생명으로 나아가는 파스카 여정이다. 오늘 라자로의 부활은 이 여정의 절정이며, 부활의 약속을 미리 보여 주는 상징이다.
2. 라자로의 병: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사건
예수님께서는 친구 라자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4절) 이 말은 단순히 라자로의 병이 고쳐질 것이라는 뜻을 넘어,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인간의 고통과 죽음을 통해 드러난다는 깊은 신학적 의미를 지닌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 장면을 이렇게 해석한다. “주님은 고통을 멀리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고통 속에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신다. 그분은 죽음을 미루신 것이 아니라, 죽음을 통해 생명의 힘을 보여 주시려 지체하신 것이다.”(Homilia in Ioannem 62,1)
라자로의 부활은 단지 한 인간의 생명을 연장하는 기적이 아니라, 곧 다가올 예수님 자신의 부활을 미리 보여 주는 “예형”(prefiguration)이다. 예수님께서는 라자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심으로써, 자신이 곧 죽음을 이기는 생명의 주님임을 드러내신다. 그리고 이 사건은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이라는 더 큰 영광으로 이어진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패배가 아니라, 생명을 향한 승리의 문이다.
3.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믿음의 고백
오늘 복음의 정점은 예수님의 선언이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25-26절) 이 말씀은 단순히 미래의 부활을 약속하는 선언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 머무는 자는 이미 지금 여기서 부활의 생명 안에 산다는 계시이다. 이 신앙을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에게 묻는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26절)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27절) 마르타의 이 고백은 베드로의 신앙 고백(마태 16,16)과 나란히, 요한 복음 전체의 중심 고백으로 평가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를 이렇게 해석한다. “마르타의 믿음은 무덤을 열었다. 믿음이 없었다면 돌은 여전히 닫혀 있었을 것이다. 믿음은 죽음을 깨우는 열쇠다.”(In Ioannis Evangelium Tractatus 49,15) 교리서는 신앙을 단순한 동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생명 안으로 들어가는 참여라고 설명한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그분과 일치하여, 그분의 생명 안에 참여하는 것이다.”(987항)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