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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3월 24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3-24 조회수 : 58

 [사순 제5주간 화요일] 
 
복음: 요한 8,21-30: “높이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누구라는 것을 알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24절)라고 유다인들에게 단호히 말씀하신다. 주님을 믿지 않고 거부하는 이는 결국 죄 안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경고이다. 그러나 이 경고는 단순히 두려움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깨우쳐 주시는 말씀이다. 우리 모두에게도 예수님을 진정한 구세주로 받아들일 기회가 주어져 있다. 문제는 우리가 그분을 어떻게 찾고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이다. 
 
유다인들은 예수님께 “당신이 누구요?”(25절)라고 묻는다.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내가 너희에게 말해 오지 않았느냐?”(25절)라고 대답하시며, 당신이 바로 “한 처음에 계셨던 말씀”(요한 1,1)이심을 드러내신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알아듣지 못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 구절을 해설하면서, “그들은 그분을 찾았지만, 올바른 방식으로 찾지 않았다.”(In Ioannis Evangelium Tractatus 38,2)라고 말한다. 주님을 올바른 마음으로 찾지 않는다면, 결국 진리를 만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것이다.”(28절)라고 하신다. 여기서 “들어 올림”은 바로 십자가를 의미한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 말씀을 해설하며, “바로 십자가 위에서 그의 신적 위엄이 더욱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Homiliae in Ioannem 52,1)라고 했다. 사람들에게는 치욕처럼 보였던 십자가가, 사실은 예수님의 하느님이심을 드러내는 자리였다. 
 
예수님은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나와 함께 계시고… 내가 언제나 그분 마음에 드는 일을 한다.”(29절)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성자와 성부의 깊은 일치를 드러내는 말씀이다. 성 이레네오도 이를 가리켜 말한다. “그리스도는 아버지에게서 파견되었을 뿐 아니라, 언제나 아버지와 함께 계신다.”(Adversus Haereses IV,14,1) 아버지와 아들의 일치는 단순한 협력 관계가 아니라, 존재와 뜻의 완전한 일치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당시 유다인들에게만 향한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주어진다. 우리는 언제나 순간순간, 예수님을 맞이할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교리서는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인류의 구원을 위한 완전한 자유의 행위를 드러내셨다.”(616항)라고 한다. 또한 “예수님은 진리이시므로, 그분을 거부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심판하게 된다.”(678항)라고 한다. 
 
십자가는 세상의 눈에는 패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드러나는 자리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올바른 방식으로 찾고 믿을 때, 우리는 죄 안에서 죽지 않고, 그분과 함께 생명에 이르게 된다. 이 사순 시기 동안 우리 각자가 순간순간 다가오시는 주님께 올바른 응답을 드리며, 십자가 안에서 드러난 그분의 참된 신원을 깨닫고 받아들일 수 있기를 청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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