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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3월 27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3-27 조회수 : 45

 [사순 제5주간 금요일] 
 
복음: 요한 10,31-42: 요르단강 건너편으로 가시어 
 
오늘 복음에서 유다인들은 예수님께 돌을 던지려 한다. 그 이유는 단순히 기적 때문이 아니라, “당신은 사람이면서 하느님으로 자처하고 있소.”(33절)라는 이유 때문이다. 그들은 예수님의 정체를 끝내 받아들이지 못했다. 예수님은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요한 1,1)라고 한 분이다. 성 아타나시오는 이를 이렇게 요약한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은, 우리가 하느님의 신성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함이다.”(De Incarnatione 54,3) 곧, 하느님이 사람이 되신 것은 사람이 하느님처럼 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말씀에 참여함으로써 하느님 자녀가 되며, 그리스도와의 친교 안에서 신적 생명을 나누어 받는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시편 82,6)을 인용하시며 말씀하신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이들을 신이라고 하였다.”(35절). 성 이레네오는 이 말씀을 해석하며 이렇게 말한다. “그들이 신이라 불린 것은 그들 자체에서가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받은 은총 때문이다.”(Adversus Haereses IV,38,4) 만약 말씀을 통해 사람들이 하느님과 같아진다면, 그 말씀 자체가 참된 하느님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다시금 당신의 사명을 밝히신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일들을 하고 있지 않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내가 그 일들을 하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더라도 그 일들은 믿어라.”(37-38절).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드러내는 표징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말한다. “내가 하는 일들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드러낸다.”(In Ioannem Tractatus 48,9) 곧, 아들의 일은 곧 아버지의 일이며, 예수님의 사명은 곧 아버지의 사랑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다.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다시 붙잡으려 했지만, 그분은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 요르단강 건너편, 요한이 세례를 주던 곳으로 물러가셨다(40절). 이것은 단순한 장소 이동이 아니라, 구원의 여정이 유다인들의 거부를 넘어 다른 민족들에게까지 확장됨을 상징한다. 교회는 이를 “보편 구원 의지”로 가르친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원하십니다.”(1티모 2,4; 교리서 2822항) 그래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 몰려와 요한이 증언한 대로 그분을 믿게 되었다고 복음은 전한다. 이는 거부하는 자들에게서 구원이 물러나고, 열린 마음으로 믿는 이들에게 구원이 다가옴을 보여 준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일을 하는 아들”이시다. 우리도 그분을 믿고 따르며, 아버지의 일을 함께 살아내야 한다. 그럴 때 우리 역시 빛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내가 하는 일들은 믿어라. 그러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38절).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오늘도 아버지의 일을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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