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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3월 28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3-28 조회수 : 42

[사순 제5주간 토요일] 
 
복음: 요한 11,45-56: 그들은 예수를 죽일 음모를 꾸미기 시작하였다. 
 
오늘 복음에서 유다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제거하려고 의논하는 것은 단순히 정치적 문제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의 기득권과 자기 보존의 욕망 때문이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 장면을 해석하며, 지도자들이 민족의 안위와 성전을 말하였지만 실제로는 자기들의 자리와 권력만을 염려했다고 지적한다. “그들은 민족의 멸망을 걱정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자신들의 자리와 이익을 잃을까 두려워했다.”(Tractatus in Ioannem 49,7) 이는 곧 하느님의 계획에 자신을 맞추기보다, 자기 이해관계와 안전을 우선시한 인간적 태도의 단적인 모습이다. 
 
대사제 가야파는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50절)라고 말한다. 요한 복음사가는 이를 ‘대사제로서 무의식적으로 한 예언’이라고 설명한다. 교부들은 이 구절에서 하느님의 섭리가 인간의 악한 의도까지도 구원 계획 안에서 사용하신다는 점을 강조한다. 오리게네스는 이렇게 주석한다. “하느님은 때로 악인의 입술을 통하여도 진리를 드러내신다. 가야파는 자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었지만, 그 말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한 인류 구원의 신비를 미리 선포하고 있다.”(Commentarium in Ioannem, XIX, 16) 따라서 인간적 음모와 불의의 말조차도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서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된다. 
 
가야파의 말은 단순히 이스라엘 민족의 보존을 위한 희생을 의미했지만, 성경은 이를 보편 구원으로 확장한다. 성 치프리아노는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단 한 민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흩어진 모든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는 희생이었다. 그분의 피는 교회의 일치를 낳았다.”(De catholicae ecclesiae unitate, 7) 교회 헌장에서도 가르친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당신 안으로 모아들이시며, 새 백성, 곧 하느님의 백성을 창조하셨다.”(9항 참조)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경고한다. “그들은 하느님의 영광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 자리를 잃는 것을 두려워했다. 우리가 그들의 어리석음을 보며, 우리의 삶에서도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Homilia in Ioannem 65,1) 예수님이 생명의 주님으로 라자로를 살리신 기적을 본 지도자들은 오히려 죽음의 음모를 꾸민다. 신앙이 없는 마음은 기적조차도 믿음을 일으키지 못하고, 오히려 불안과 두려움을 키울 뿐이다. 예수님의 죽음은 인간의 음모와 불의 속에서도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드러내는 사건이다. 그리스도는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려고”(52절) 돌아가셨다. 사순을 지내는 우리도 그분의 희생 안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고, 내 이익과 체면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과 사랑의 계명을 판단 기준으로 삼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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