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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2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4-02 조회수 : 182

[주님 만찬 성목요일] 
 
요한 13,1-15 
 
얼굴 닦아주는 부모, 발 닦아주는 부모 
 
 
오늘 우리는 주님께서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요한 13,1)는 그 지극한 신비 안으로
초대받았습니다.
성목요일, 주님께서는 성체성사를 세우시기 전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저는 이 발 씻김 예식을 '부모와 자녀의 관계'라는 렌즈를 통해 바라보고자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우리 발을 씻기시는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크게 두 부류의 부모 밑에서 자랍니다. 하나는 자녀의 '얼굴'을 닦아주는 부모이고, 다른 하나는 자녀의 '발'을 닦아주는 부모입니다.  
 
먼저 얼굴을 닦아준다는 것은 자녀를 세상 사람들에게 "내 자식 이렇게 잘났어!"라고 보여주기 위해 다듬는 행위입니다.
얼굴은 세상에 드러나는 '자존심'과 '명예'를 상징합니다.
"너는 나의 자랑이야!"라고 말하며 자녀의 성적, 외모, 학벌이라는 얼굴을 반짝반짝하게 닦아
자신의 허영심을 채우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결국 불행해집니다.
모든 고통의 원인은 욕망인데, 결국 부모의 욕망을 채우는 도구가 되기 때문입니다.  
 
영화 '오즈의 마법사'의 주인공 주디 갈랜드(Judy Garland)의 어머니 에델 검(Ethel Gumm)은
그녀는 딸을 최고의 스타로 만들기 위해 아홉 살 소녀였던 딸에게 '에너지 약'이라며 각성제를 먹였고, 밤에는 잠을 자게 하려고 수면제를 강제로 투여했습니다. 
 
촬영장에서 지치지 않고 예쁜 '얼굴'을 유지하게 하려고 하루에 블랙커피와 묽은 수프만 먹이며
혹독한 다이어트를 시켰습니다.
딸의 건강이나 정서보다 영화사의 계약 조건과 수입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주디 갈랜드는 평생을 약물 중독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마흔일곱이라는 이른 나이에 화장실 바닥에서 쓸쓸히 세상을 떠났습니다.(출처: 제럴드 클라크 『겟 해피: 주디 갈랜드의 생애』) 
 
자녀의 얼굴을 씻는 부모는 심리학적으로 '자기애적 대리만족'에 빠진 것입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자녀를 통해 보충하려는 욕망입니다.
가지지 못한 배고픔으로 자녀까지 먹어 치우는 괴물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반면, 발을 씻어주는 부모는 자녀의 얼굴(자존심)이 아니라 발(욕망과 상처)을 봅니다.
발은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이며, 가장 낮고 더럽고 수치스러운 곳입니다.
그것을 씻어주고 닦아줄 때 세상은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아이 가슴 속에는 자존감이 샘솟습니다.
"내 자부심이 되어라"가 아니라, "괜찮아, 네가 어떤 모습이든 너는 있는 그대로 소중하단다"
라는 말을 듣는 것입니다.  
 
영화 '시네마 천국' (1988)의 알프레도(Alfredo)도 그런 인물입니다.
눈이 멀어 더는 일을 할 수 없게 된 영사기사 알프레도는 고아나 다름없던 어린 토토를 매몰차게 밀어냅니다.
그는 토토가 낡은 시골 마을에 남아 자신의 곁을 지키며 안주하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욕망을 가질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토토를 위해 기꺼이 악역을 자처하며 마을을 떠나라고 매정하게 밀어냅니다. 
 
"돌아보지 마라. 향수에 젖지 마라.
네가 하는 일을 사랑해라."
그는 토토가 가진 과거에 대한 집착과 고립이라는 '더러운 발'을 자신의 외로움으로 씻어준 것입니다. 알프레도가 죽은 뒤 토토에게 남긴 유산, 즉 검열로 잘려 나갔던 수많은 '키스 신'들을 이어 붙인 필름은 "너의 모든 불완전한 순간들이 실은 사랑이었다"라는 최고의 발 씻김이었습니다. 그 사랑 덕분에 토토는 죄책감 없이 세계적인 거장으로 우뚝 설 수 있었습니다. (출처: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 영화 '시네마 천국' 1988) 
 
오늘 복음은 아주 중요한 비밀을 우리에게 일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셨다는 것, 그리고 당신이 하느님에게서 오셨다가 하느님께 돌아가신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 (요한 13,3)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실 수 있었던 이유는 그분이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모든 것'을 받았음을 확신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느님께 다 받았다고 믿고 감사하는 부모는
자녀에게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내 잔이 넘치니 그저 흘려보낼 뿐입니다.  
 
베드로의 발을 씻기신 주님의 행위는 그의 교만을 씻어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배반했습니다. 하지만 유다와 달리 베드로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님께서 무릎을 꿇고 자신의 더러운 발을 만지시던 그 '겸손한 사랑'을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통곡하며 회개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위해 노예가 되셨던 그분의 '발 씻김'을 기억하며 그분이 나에게 '다 주셨음'을 감사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감사한 것을 찾아내 다 주신 분이 계심을
믿을 때, 비로소 우리의 죄는 씻겨 나갑니다. 감사하는 자만이 깨끗해질 자격을 얻습니다. 
 
여기, 감사의 힘으로 자신의 비극을 축복으로 바꾼 한 여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베스트셀러 『천 개의 은총』의 저자 앤 보스캠프(Ann Voskamp)입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 동생이 농장 사고로 트럭에 치여 죽는 광경을 눈앞에서 보았습니다.
그 충격으로 그녀의 삶은 분노와 공포, 결핍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녀는 자녀들에게도 늘 완벽을 강요하며 '얼굴 닦아주는' 엄격하고 신경질적인 어머니였습니다. 아이들이 우유를 쏟거나 진흙 묻은 발로 거실을 더럽히면, 그녀는 그것을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여 고함을 쳤습니다.
"빨리 안 닦아! 왜 이렇게 말썽이니!" 그녀에게 자녀는 자신의 완벽함을 증명해야 할 '얼굴'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친구가 제안했습니다.
"감사한 일 천 가지를 매일 적어보게."
그녀는 처음엔 비웃었습니다. "내 인생에 감사할 게 뭐가 있다고!" 하지만 그녀는 억지로라도 적기
시작했습니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 '아이들의 웃음소리', '부드러운 비누 향기'...
아주 사소한 것부터 하느님께 받은 것들을 찾아내기 시작하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녀는 깨달았습니다.
'아, 하느님은 이미 나에게 모든 것을 다 주고 계셨구나!' 감사일기를 통해 그녀가 '다 받은 사람'임을 확신하게 되자, 자녀들을 향한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어느 날 아들이 실수로 바닥에 잼을 잔뜩 쏟았을 때, 예전 같으면 불같이 화를 냈을 그녀가 조용히 아들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들의 눈을 보며 웃어주었습니다. 
 
"괜찮아. 우리에게 먹을 잼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하니? 그리고 네가 건강하게 움직여서 이걸 쏟을 수 있다는 것도 축복이야." 
 
그녀는 아이의 '얼굴'을 닦아 완벽하게 만들려던 강박을 버리고, 아이의 실수와 부끄러움이라는
'더러운 발'을 감사의 수건으로 씻어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녀가 아이의 발치를 기쁘게 닦아낼 때, 아이는 비로소 엄마의 사랑 안에서 안식하며 정직하고 밝은 아이로 성장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가득할 때 부모는 비로소 기쁘게 노예가 되어 자녀의 발을 닦습니다.
(출처: 앤 보스캠프 『천 개의 은총』) 
 
자녀를 키울 자격은 내가 얼마나 풍족한가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감사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내가 하느님께 다 받았음을 믿을 때만 타인의 허물을 덮어주는 여유가 생깁니다.
그러니 힘들더라도 감사할 것이 없다는 자신과 싸워 하루에 감사한 것 5개씩 쓰고 잠자리에 드는 기적의 5분을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교부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신이 부유하다고 믿는 자는 남의 발을 씻기지
못한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으로 자신이 모든 것을 가졌음을 깨닫는 자는 기쁘게 노예가 되어 타인의 발을 닦는다.
부모가 무릎을 꿇을 때, 자녀는 그 무릎 사이에서 하느님의 얼굴을 보게 될 것이다." (출처: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요한 복음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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