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수난 성금요일
요즘 사람들을 보면 화가 참 많은 것 같습니다. 화가 참 많은 것 같습니다. 화낼 일도 아닌데 갑작스럽게 화를 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실 화내면 나만 손해입니다. 옛 우리 조상님들도 “화를 내는 사람은 자신을 먼저 해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분노가 신체를 병들게 합니다. 혈압이 오르고, 심박수가 올라갑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화내는 사람을 피하기 마련입니다. 자기 주변에 사람이 없는 사람은 부정적인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 특히 화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들 곁에는 자기를 도울 사람도 없어지게 됩니다. 얼마나 큰 손해입니까?
화가 날 상황에서 “그러려니” 하면서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특히 그 상대를 위해 기도하면서 부정적 감정이 자기를 덮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싸우고 화내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오히려 침묵이 옳습니다. 침묵 안에서 기도하고 사랑을 드러내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와 상관없다는 무관심과 무시는 잘못입니다. 이 안에서는 기도할 수 없기 때문이며, 사랑도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냥 자기 위주로 사는 이기적인 모습일 뿐입니다. 그래서 철저히 기도하면서 사랑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교회 전례력 중에서 가장 슬픈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감사한 날이기도 합니다. 주님의 수난과 죽음으로 우리는 구원의 길로 들어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님 수난 성금요일 전례의 절정은 ‘십자가 경배 예식’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십자가는 승리의 십자가라고 말합니다. 주님과 함께 구원을 이루어가는 영광의 십자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십자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고통, 실패의 경험들이 단순히 우리를 짓눌리는 형틀이었을까요? 주님을 통해 승리의 십자가, 영광의 십자가가 될 수 있습니다. 이를 오늘 요한 복음의 수난기를 묵상하면서 분명히 알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무덤에 묻히시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그분의 사랑이 너무나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런 죄가 없으신 분이 군사들과 사람들의 조롱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까지 당하셔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당신의 신성으로 피하지 않으십니다. 꿋꿋하게 완전한 인간의 모습으로 그 고통과 시련을 받아들이십니다. 아버지 하느님께서 맡기신 인류 구원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함입니다.
주님의 이 사랑에 우리는 어떻게 응답하고 있을까요? 예수님의 십자가를 우리가 짊어질 수는 없습니다. 바로 나의 십자가를 사랑으로 짊어져야 합니다. 침묵 속에서 기도와 사랑으로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우리가 그들을 잊기 전까지, 죽은 이들은 결코 우리에게 죽은 존재가 아니다(조지 엘리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