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주보

수원주보

Home

게시판 > 보기

오늘의 묵상

4월 7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4-07 조회수 : 19

[부활 팔일 축제 화요일] 
 
복음: 요한 20,11-18: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마리아 막달레나는 무덤 앞에 홀로 남아 울고 있다(11절). 그 눈물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주님께 대한 깊은 사랑의 표현이다. 제자들이 돌아간 뒤에도 자리를 지킨 것은 사랑 때문이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이 없으면 눈물도 없다. 그러나 사랑은 눈물을 통해 더욱 굳건해진다.”(In Ioann. Evang. tract. 121,3) 마리아의 눈물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향한 갈망이었고, 바로 그 갈망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게 했다.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다가와 물으신다.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15절) 이 질문은 단지 마리아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시는 부활의 물음이다. 우리가 신앙생활 속에서 진정으로 찾는 분은 누구인가? 성공, 안락, 세속적 만족이 아니라, 살아계신 주님이신가?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말한다. “인간의 마음은 그리스도를 찾을 때만 안식을 얻는다. 그분이야말로 참된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다.”(Redemptor Hominis 10항) 마리아는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실 때(16절), 눈이 열리고 그분을 알아본다. 성 그레고리오는 이렇게 설명한다. “주님은 이름을 부르심으로써 마음의 눈을 열어주셨다. 그분의 음성이 사랑의 불을 일깨운 것이다.”(Homiliae in Evangelia 25,1) 부활 신앙은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부르시는 그분의 목소리에 응답하는 것이다. 주님은 지금도 나를 부르시며, 내가 그분을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하기를 기다리신다. 
 
마리아는 너무 반가워 예수님의 발을 붙잡으려 한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신다.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나는 내 아버지께 올라간다.”(17절) 이는 단순히 육체적 접촉을 금지하신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그분과의 관계는 이전과 다른 차원, 곧 성령 안에서 믿음으로 사는 새로운 관계임을 가르쳐 주신다. 예수님은 마리아를 “내 형제들에게 가서 전하여라.”(17절)며 복음의 첫 사도로 세우신다. 부활의 기쁨은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나누어야 할 선포 사명이다. 선교 교령은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선포의 사명으로 이어진다. 교회는 받은 복음을 세상 끝까지 증언하도록 부름을 받았다.”(3항) 부활의 삶은 눈물 속에서 주님을 찾는 끈질긴 사랑, 그분의 음성을 듣는 영적 민감함, 세상에 복음을 증거하는 파견의 삶으로 드러나야 한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서 주님을 만났듯이, 우리도 삶의 눈물 속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부르신다.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15절) 우리가 일상에서 그분을 “라뿌니, 스승님!”이라고 고백하며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은 참된 부활의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