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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12일 _ 김건태 루카 신부

작성자 : 김건태 작성일 : 2026-04-11 조회수 : 38

토마스의 부활 이야기

 

[말씀]

1독서(사도 2,42-47)

사도행전에서 저자 루카는 줄곧 이방인 세계에 복음을 전파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토로함과 아울러 성령의 능력으로 이 어려움이 하나씩 극복되어 나감을 기술합니다. 사도행전 앞부분에 해당하는 오늘 독서에서 루카는 새로운 신앙의 힘이 얼마나 큰 것인지 전해주기 위하여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이상적인 모습을 그려줍니다. 이렇게 루카는 모든 인간사회가 겪을 수밖에 없는 위기의 순간들을 소개하기에 앞서 새로운 공동체상을 제시하여 희망을 북돋웁니다.

2독서(1베드 1,3-9)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새로운 신앙생활이 어떤 것인지를 일깨워 줍니다. 새로운 신앙생활, 그것은 인간의 마음을 타락으로 이끌어가는 부패한 세상을 구할 능력을 지니고 있기에 그 자체가 또 하나의 부활사건이 됩니다. 물론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교회는 앞으로도 쉼 없이 고난의 길을 걸어야 하고 장애물들을 치워 나가야 하지만, 신앙인들은 이미 희망과 기쁨으로 충만한 사람들, 구원을 향한 대열에 합류한 사람들이기에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복음(요한 20,19-31)

복음저자 요한은 단 하나의 이야기 안에 세 가지 장면, 곧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당신 모습을 드러내심과 성령을 보내심과 죄의 용서를 위해 당신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하심을 요약해서 전해 줍니다. 복음저자 루카와는 달리 요한에게 주님 부활과 성령 강림 사건은 동일한 기본적 사건의 양면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아울러 사도 토마스의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부활사건 이후에도 사도들의 신앙은 여전히 어려운 지경에 놓여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부활사건은 역시 사랑과 믿음 없이는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었으며,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새김]

매년 부활 제2주일 미사에는 오늘 복음 말씀이 봉독 됩니다. “여드레 뒤에라는 표현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사도단의 부활 체험을 담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사도들이, 지상에서 당신의 구원사업을 이어나가도록 몸소 선택하시고, 늘 곁에 두고 말씀과 행적으로 가르쳐온 사도들이 앞장서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증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에는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하고 말한, 의심의 대명사 토마스도 당연히 포함되어야 합니다.

토마스는 부활이 아니라 아직 죽음의 상태, 곧 무덤을 벗어나지 못해 쩔쩔매고 있습니다. 주님의 상흔, 손과 발의 못 자국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사람의 감각 기관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만 믿겠다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것이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짐으로써, 다시 말해서 감각 기능으로 판단하거나 처리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닌데도 말입니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감각이라는 것이 인간의 마음처럼 변덕스럽기 짝이 없기 때문입니다. 때와 장소, 혹은 기분이나 건강 상태에 따라 인식의 차이를 보이는 것이 감각입니다. 똑같은 사물을 놓고도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게 하고, 똑같은 음식을 섭취하면서도 시장기에 따라 맛을 다르게 느끼게 하는 것이 감각입니다. 어떻게 보면, 정말 믿지 못할 것이 감각 기능입니다. 그런데 이 감각으로 믿음을 가늠하겠다고 하니,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믿음이 자신의 운명과 삶의 모든 것을 내맡기는 행위이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감각으로 믿음이 아니라, 오히려 믿음으로 감각이 제 기능을 발휘하도록 도움을 주어야 할 때가 더 많습니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하는 속담은, 모든 것을 의심하라기보다는 매사에 실수하지 않도록 신중하게 처신하라는 가르침인데도, 믿음이 없으면 어떠합니까? 두들겨 보고 또 두들겨 보고서도 무너지면 어쩌나 하는 불신이 앞서면 건너지 못합니다. 의심 많은, 믿지 못하는 토마스를 통해 우리가 다시금 살펴야 할 상식적인 지점입니다.

 

토마스를 좀 더 가까이 보았으면 합니다. 토마스는 한때 다른 제자들의 모범이던 사람, 주님의 죽음을 예감하고서는 우리도 스승님과 함께 죽으러 갑시다.하고 제안했던 사람입니다. 그러했던 그가 철저한 냉담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예수님께 걸었던 희망이 컸던 만큼 그분의 참혹한 죽음이 주었던 충격도 컸기 때문일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상 처절한 죽음 앞에서 믿음과 희망이 무너지고 만 것입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그 좌절과 불신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아직도 죽음의 상태에서 허덕이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토마스를 죽음에서 건져내시려 그에게 다가오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사랑이 절망과 불신과 두려움이라는 죽음에서 토마스를 구원해내십니다. ‘보고서야 믿는처지를 뛰어넘어 보지 않고도 믿는수준으로 차가웠던 토마스의 믿음, 죽어버린 믿음을 다시 끌어 올리십니다. 그리하여 (미사에서 사제가 성체와 성혈을 들어 올릴 때, 우리가 마음속으로 외치는)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는 신앙고백으로 인도하십니다. 이처럼 토마스의 이야기는 또 다른 차원의 부활 이야기, 부활시기 동안 우리가 진정 추구해야 할 부활신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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