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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12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4-12 조회수 : 22

[부활 제2주일] 
 
복음: 요한 20,19-31: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오늘은 부활 제2주일, 곧 하느님의 자비 주일이다. 전통적으로 이날은 부활 성야에 세례를 받은 새 신자들이 흰 옷을 벗는 ‘사백 주일’(Dominica in albis) 로 불려왔다. 그 흰옷은 새 생명의 표징이며, 이제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그 세례의 은총을 실천으로 살아내야 함을 의미한다. 초대 교회의 신자들은 이 은총의 삶을 사도행전에서 분명히 보여 주었다. “그들은 한마음 한뜻이 되어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사도 4,32)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를 이렇게 해석한다. “그들은 마음과 영혼이 하나였다.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랑은 그리스도이셨다.”(Sermo 355,1) 곧,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지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 안에서 새로운 삶의 질서를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 
 
1. 부활하신 주님의 첫 선물: “평화가 너희와 함께”
요한 복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세 번 반복하여 말씀하신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19절, 21절, 26절) 이 인사는 단순한 위로의 말이 아니다. 그것은 두려움 속에 닫혀 있던 제자들에게 주시는 새 창조의 인사다. 예수님께서 “숨을 불어넣으시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22절) 하신 장면은 창세기 2장 7절, 하느님께서 사람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신 행위와 대응된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 장면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분이 숨을 내쉬셨을 때, 제자들은 새로운 생명을 받았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세상의 자녀가 아니라, 부활의 생명을 받은 새로운 창조였다.”(Hom. in Ioannem 86,4) 성령의 선물은 죄의 용서와 평화의 실현으로 이어진다.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다.”(23절) 교회는 이 성령의 은총을 통해 인간과 하느님, 인간과 인간 사이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키는 사명을 받았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교회는 성령 안에서 끊임없이 새로워지며, 사람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주는 화해의 성사가 된다.”(교회 8항) 
 
2. 의심하는 토마스: 신앙의 여정
복음의 두 번째 부분(24-29절)은 토마스 사도의 체험을 전한다. 그는 다른 제자들의 증언을 듣고도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않겠다.”(25절)라고 말한다. 토마스는 의심하는 인간의 대표, 곧 신앙을 과학적 증거로 확인하려는 세속적 이성의 상징이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은 그를 단죄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상처를 보여주시며 초대하신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만져보아라.”(27절) 
 
성 그레고리오는 이 장면을 이렇게 해석한다. “토마스는 의심함으로써 우리를 도왔다. 그의 의심은 우리 믿음을 굳건하게 하였다.”(Homiliae in Evangelia 26,7) 그리고 토마스는 감격 속에 고백한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28절) 이 고백은 단순한 인식의 변화가 아니라, 존재의 전환이다. 그는 이제 자기 삶의 주인이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고, 전적으로 그분께 의탁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29절)라는 말씀은 단지 감정적 위로가 아니라, 계시 신앙의 본질을 드러낸다. 믿음은 눈으로 보는 확증이 아니라, 하느님이 자신을 계시하셨음을 받아들이는 은총의 응답이다. 교리서는 이를 이렇게 표현한다. “믿음은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고, 인간이 그분께 전 존재를 맡기며 동의하는 것이다.”(143항) 
 
3. 보지 않고 믿는 행복: 자비의 신앙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그분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는 믿음이다. 그분은 영광중에 부활하셨지만, 여전히 상처 입은 주님으로 우리 앞에 서 계시다. 성 요한 바오로 2세가 이 주일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선포한 것도 이 때문이다. 부활의 영광은 고통의 상처를 통해 완성된 자비의 영광이기 때문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한다. “그분의 상처는 우리 믿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남아 있다.”(In Ioannem Tractatus 121,5) 이 믿음은 새로운 창조의 삶으로 이어진다. 부활의 신앙은 현실을 초월한 도피가 아니라, 세상 속에서 천상의 질서를 살아내는 삶이다. 바오로 사도는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습니다.”(콜로 3,3)라고 가르친다. 그리스도인은 성령 안에서 매일 새로 창조되며, 세상 속에서 하느님의 평화를 드러내는 사람이다. 
 
4. 결론: 부활의 평화와 감사의 삶
결국 오늘 복음의 초점은 ‘보지 않고 믿는 자의 행복’이다. 이 행복은 세속적 만족이 아니라,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한 평화의 상태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28절)이라는 고백은 우리가 지금 이 순간도 살아계신 주님 앞에 서 있다는 신앙의 체험이며, 그분께 우리 전 존재를 맡기겠다는 서약이다. 
 
이제 우리도 부활의 증인으로, 성령의 숨결에서 용서와 평화를 이루며, 새 하늘과 새 땅의 시민으로 이 땅을 살아가야 한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지만 그분을 사랑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분을 보지 못하면서도 그분을 믿기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 속에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1베드 1,8) 그것이 바로, 자비로운 부활의 주님과 하나 되어 사는 삶, 곧 “보지 않고 믿는 사람의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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