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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19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4-19 조회수 : 40

[부활 제3주일] 
 
복음: 루카 24,13-35: 엠마오의 제자들과 부활 신앙 
 
1. 엠마오로 가는 길: 믿음의 여정
루카 복음서의 엠마오 사건은 인간의 믿음의 여정을 상징한다. 제자들은 “모든 일이 일어난 그날”(13절), 절망 속에서 예루살렘을 떠나고 있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며 희망을 걸었지만,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 모든 기대가 무너졌다.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21절) 이 고백은 십자가 앞에서 무너진 인간의 이해를 드러낸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 장면을 이렇게 묵상한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걷고 있었으나,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리스도는 그들 가운데에 계셨으나, 그들의 눈은 가려져 있었다. 그들의 마음이 열리기 전까지는 눈도 열릴 수 없었다.”(Sermo 235, 2) 부활의 신비는 눈으로 보는 사건이 아니라, 마음의 눈이 열려야만 인식되는 신앙의 신비다. 따라서 부활 신앙은 단순히 ‘죽음 이후의 생명’에 대한 교리적 수용이 아니라, 절망 속에서도 주님이 동행하신다는 믿음의 체험이다. 
 
2. 말씀의 전례: 타오르는 마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모세와 모든 예언자들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말씀을 설명해 주셨다.”(27절) 이 장면은 성경의 완전한 그리스도 중심적 해석(Christocentric hermeneutics)을 보여 준다. 성 예로니모가 말했듯이,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다.”(Comment. in Isaiam. Prol.) 성경은 그리스도의 말씀이며, 부활하신 주님 자신이 그 안에 현존하신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덧붙인다. “성경은 단순한 글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와 말씀으로 대화하시는 성전이다. 성경을 펼칠 때마다 그리스도의 입술이 열린다.”(Homiliae in Matthaeum, 2,6) 
 
제자들은 이 말씀의 전례 안에서 가슴이 뜨거워지는 체험을 한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32절) 그들의 마음을 불태운 것은 논리나 증거가 아니라, 성경 안에 현존하신 부활하신 그리스도 자신이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반복된다. 매 미사에서 봉독되는 성경 말씀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살아 있는 말씀(Verbum vivum)으로서 우리를 부활의 신앙 안으로 이끈다. 교리서도 이렇게 가르친다. “성경 전체는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다. 구약은 그분을 예고하고, 신약은 그분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말씀을 풀어 주실 때, 성경의 모든 구절은 새 생명을 얻는다.”(134항) 
 
3. 빵의 전례: 성체 안의 현존
엠마오의 제자들은 나그네로 보이던 이를 그들의 집으로 초대한다.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30절) 이 장면은 명백히 성체성사(Eucharistia)를 암시한다. 성 암브로시오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들은 말씀으로 그리스도를 들었고, 성체로 그리스도를 보았다. 말씀으로 그리스도께서 마음의 문을 두드리셨고, 빵을 떼심으로써 그들의 눈을 여셨다.”(Expositio Evangelii secundum Lucam, 10,121) 이때 제자들은 “그분을 알아보았다.”(31절) 그러나 곧 “그분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31절) 
 
이는 성체 안에서 현존의 방식을 보여 준다. 그리스도께서는 더 이상 육안으로 보이지 않지만, 성체 안에서 참으로 현존하신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중심적 신앙 고백이다. 교리서는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성체성사 안에 참으로, 실질적으로, 그리고 본질적으로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신다.”(1374항) 그러므로 엠마오의 제자들은 말씀과 성체의 두 식탁을 통하여 부활하신 주님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 두 식탁은 오늘날 성찬례의 전례 구조, 즉,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의 원형이 되었다. 
 
4. 되돌아감: 파견된 증인
그들은 즉시 “그 자리에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33절)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는 더 이상 머물러 있을 수 없다. 그 만남은 선교적 열정으로 이어진다. 그들이 떠났던 예루살렘은 더 이상 공포의 장소가 아니라, 복음 선포의 시작점이 된다. 성 그레고리오는 이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그들은 주님을 빵을 떼며 알아본 후, 곧장 일어나 돌아갔다. 사랑은 게으르지 않다. 사랑은 즉시 움직이고, 사랑은 파견한다.”(Homiliae in Evangelia, 23,3)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머물러 있는 신앙이 아니라, 나아가는 신앙을 낳는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선교 사명의 기초이며, 부활의 증거이다. 
 
5. 우리의 엠마오: 오늘의 부활 체험
오늘 우리도 엠마오의 제자들과 같은 여정을 걷고 있다. 때로는 절망과 혼돈 속에서 부활의 빛을 알아보지 못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걸으시며, 말씀과 성체를 통해 당신을 드러내신다.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회칙,”성체성사로 사는 교회: Ecclesia de Eucharistia”에서 이렇게 말했다. “교회는 엠마오의 제자들과 함께 매일 성찬례의 식탁에 앉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알아보고 그분의 현존 안에서 새로운 힘을 얻는다.”(6항) 그러므로 부활의 신앙은 단지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억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살아 있는 만남’이다. 
 
6. 결론: 말씀과 성체, 그리고 증언의 삶
엠마오의 사건은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말씀 안에서 마음이 타오르고, 성체 안에서 눈이 열리며, 선교의 길 위에서 부활의 증인이 된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성체를 모실 때마다, 그리스도께서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라고 하신 약속은 새롭게 실현된다. 그분이 지금도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우리와 함께 걷고 계심을 믿는 이가 바로 부활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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