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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23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4-23 조회수 : 138

[부활 제3주간 목요일] 
 
요한 6,44-51  
 
생명의 양식은 나를 먹고 새 삶의 방식을 제공한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요한 6,51)
찬미 예수님! 부활하신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빕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살'을 먹어야만 영원히 살 수 있다는 파격적인 선언을
하십니다.
우리는 보통 '먹는다'는 행위를 내가 대상을 파괴하여 내 몸의 영양분으로 만드는 일방적인 약탈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하느님 나라의 '먹음'은 정반대입니다.
그것은 내가 먹은 대상에게 내가 다시 먹힘으로써, 나의 낡은 주권이 사라지고 그 양식의 새로운 법칙에 의해 재창조되는 '거룩한 통합'의 사건입니다.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에너지(은총)'와 '법칙(진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진짜로 오래 살게 만드는 양식은, 내가 그것을 먹었을 때 오히려 그것이 나를
먹어치우고 나에게 새로운 생활 방식과 에너지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 '먹음으로써 먹히는' 신비가 어떻게 우리를 영생으로 인도하는지 논리적이고 과학적으로 파헤쳐 보겠습니다. 
 
현대 생물학의 『세포 내 공생설』(Endosymbiotic Theory)은 먹고 먹히는 관계가 어떻게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지 보여주는 가장 완벽한 모형입니다.
우리 몸의 에너지를 만드는 '미토콘드리아'는 원래 독립된 박테리아였습니다. 
 
약 20억 년 전, 거대한 세포 하나가 이 작은 박테리아를 잡아먹었습니다.
일반적인 자연계라면 박테리아는 소화되어 사라졌겠지만, 여기서 기적이 일어납니다.
먹힌 자(미토콘드리아)가 죽지 않고 오히려 먹은 자(대세포)의 자원을 먹으며 그 안에서 '에너지 공장'이 된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논리가 나옵니다.
세포는 미토콘드리아를 먹었지만, 결과적으로 세포의 주권은 미토콘드리아의 법칙에 먹혔습니다.
이제 세포는 미토콘드리아가 제공하는 '에너지의 법칙' 없이는 단 1초도 살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성체성사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성체를 영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의 자아를 땔감 삼아 태우시고, 그 대신 '성령'이라는 하늘의 에너지를 방출하십니다.
내가 주님을 먹었으나 결국 그분의 에너지에 내가 먹힘으로써 그분의 방식대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출처: 린 마굴리스, 『공생자 행성』) 
 
생명의 시작인 '수정' 과정 또한 이 일치를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난자가 정자를 받아들이는 순간, 난자는 정자를 '먹습니다.' 하지만 그 찰나에 난자의 운명은 정자가 가져온 유전 정보라는 법칙에 완전히 먹힙니다. 
 
정자가 가지고 온 유전자라는 '법칙(진리)'이 난자의 핵 속으로 침투하여, 난자를 이제 더 이상
난자가 아닌 '태아'라는 전혀 새로운 정체성으로 재창조하기 때문입니다.
난자의 생명 주기는 고작 1달이지만, 정자를 먹고 그것의 법칙에 자신을 내어줄 때 비로소 9달을 살고, 다시 수십 년을 사는 인간으로 태어납니다. 성체를 모시는 우리 영혼이 바로 이 난자와 같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영접(먹음)하지만, 그분의 신성한 법칙이 내 영혼을 먹어치워 나를 '죄인'에서
'하느님의 자녀'로 완전히 탈바꿈시킵니다. 먹었으나 먹힘으로써 이전의 나는 죽고, 그리스도의 법칙으로 움직이는 새로운 인간으로 부활하는 것입니다.
(출처: 스콧 길버트, 『발생생물학』) 
 
이제 요한복음 21장의 신비를 연결해 봅시다. 베드로가 낚아 올린 153마리의 물고기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상징합니다.
베드로(교회)는 그들을 그물로 낚아 올렸습니다.
어떻게 잡았을까요?
바로 그들에게 '먹힘'으로써 잡습니다.
낚시꾼은 미끼를 내어주고 물고기를 잡듯, 교회는 성체라는 미끼를 세상에 내어줌으로써 영혼들을 낚아 올립니다. 
 
하지만 잡힌 물고기들은 결국 어부의 에너지와 법칙을 따라야 합니다.
물고기가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유일한 길은 교회의 입속으로, 즉 그리스도의 신비체 안으로 '먹혀 들어가는' 것입니다.
물고기가 물속에만 있으면 그저 짐승일 뿐입니다. 하지만 베드로(교회)에게 잡히고, 그리스도의
지체들에 의해 '먹히게' 될 때 그 물고기는 비로소 '하느님 자녀'라는 영광스러운 정체성으로 통합됩니다.
먹힌다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한낱 미물이었던 존재가 하느님 가족의 살과 피로 재구성되는 승격의 사건입니다. (출처: 성 아우구스티누스, 『요한복음 주해』) 
 
여기서 우리는 아주 실존적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나는 과연 무엇을 먹으며 살고 있는가?"
인간은 먹는 대로 됩니다.
삼겹살을 먹으면 돼지 세포가 내 몸을 구성하듯,
내가 어떤 '사상'과 '논리'를 먹느냐에 따라 내 인생의 길이 결정됩니다. 
 
그리스도를 먹으면 새로운 운영체제(OS)가 설치됩니다.
우리가 세상의 지식이나 돈을 먹으면, 그것은 나의 '삼구(욕망)'를 채우는 도구가 될 뿐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라는 빵을 먹으면, 우리 영혼에는 하느님 나라의 새로운 '인생 운영체제(OS)'가 설치됩니다. 
 
이 신비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성인은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입니다.
그녀는 어느 날 기도 중에 예수님께 간청했습니다.
"주님, 제 마음을 당신께 다 드릴 테니 당신의 마음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러자 놀라운 환시가 나타났습니다.
예수님께서 가타리나의 가슴을 열어 그녀의 심장을 꺼내셨습니다.
예수님이 그녀의 심장을 '먹어(흡수해)' 버리신 것입니다.
그리고 며칠 뒤, 주님은 당신의 불타는 심장을 가타리나의 가슴 속에 넣어주셨습니다. 
 
이후 가타리나는 고백했습니다.
"이제 저는 제 마음으로 생각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생각합니다.
제 안의 낡은 가타리나는 주님의 사랑에 먹혀 사라졌고, 오직 그리스도만이 제 안에서 숨 쉬고
계십니다."
그녀가 주님께 먹히기를 자처했을 때, 그녀는 일개 여인이었음에도 유럽의 평화를 이끄는
하느님의 대사가 되었습니다.
나를 먹어주시는 주님을 모실 때 비로소 우리는 위대한 존재로 상승합니다. (출처: 레이몽드 드 카푸아,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전기』) 
 
왜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생명의 빵'이라 부르셨을까요? 
세상의 다른 모든 양식은 나를 '나'로 남겨두지만, 예수님은 나를 먹어치워 '하느님'으로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빵은 내 위장을 잠시 채우고 썩어 없어지지만, 위에서 온 양식은 내 자아를 먹어치우고 나를 영원으로 인도합니다. 미토콘드리아가 세포의 영양분을 먹고 대신 빛과 열을 내주듯, 여러분이 모시는 성체가 여러분의 이기심을 먹게 하십시오.
그분이 여러분 안에서 여러분의 자존심을 땔감 삼아 성령의 불꽃을 피우게 하십시오.
교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마지막 권고를 가슴에 새깁시다. 
 
"그대는 그대가 먹는 바로 그것(그리스도의 몸)이 되어야 한다.
먹힘으로써 그대의 비천한 인성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신성이 채워질 것이다.
이것이 하느님이 인간을 사랑하시는 유일한 방식이다." (출처: 성 아우구스티누스, 『강론집』 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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