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4주일]
복음: 요한 10,1-10: “나는 양이 드나드는 문이다.”
1. 부활하신 주님, 참된 목자이신 그리스도
오늘 복음은 부활하신 주님을 “착한 목자”로 묘사한다. 이는 단순히 따뜻한 비유가 아니라, 하느님 자신에 대한 계시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오랜 세월 동안 하느님을 목자로 고백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시편 23,1) 이 고백 안에는 보호자, 인도자, 생명의 근원, 아버지의 돌봄이라는 깊은 신앙 체험이 담겨 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목자”라 부르신 것은, 단지 인도자의 이미지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친히 당신 백성을 돌보시는 그 사랑이 당신 안에 완성되었음을 선포하신 것이다. 성 예로니모는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인도하시는 목자이시며, 동시에 양우리의 문이시다. 그분을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생명의 풀밭에 들어갈 수 없다.”(Commentarius in Ioannem, 10,1-3)
2. “나는 양이 드나드는 문이다.”: 구원의 유일한 통로
예수님께서 “나는 양들의 문이다.”(7절)라고 하실 때, 그분은 단순히 입구가 아니라, 하느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임을 드러내신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 즉, 그리스도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개자(Mediator)이시며, 그분을 통하여서만 우리는 참된 생명을 얻는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문이시다. 왜냐하면, 그분을 통하여 우리는 교회로 들어가고, 그분 안에서 우리는 생명을 얻기 때문이다.”(In Ioannem, cap. 10, lect. 2) 따라서 ‘문’은 진리와 사랑의 길이며, 그리스도께서 몸소 보여 주신 순명, 겸손, 그리고 자기 희생의 길이다.
그 문을 통하지 않고, 곧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지 않고, ‘양우리’에 들어가려는 자는 도둑이며 강도다.(1절) 오늘 복음의 경고는 명확하다. 진정한 목자는 십자가를 통하여 문으로 들어가는 이이며, 거짓 목자는 권력이나 명예, 탐욕으로 담을 넘어 들어가는 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덧붙인다. “문을 통하지 않고 들어오는 자는, 십자가의 길을 거부하는 자다. 그리스도의 문은 사랑과 희생의 문이다.”(Homiliae in Ioannem, 59,2)
3. 도둑과 강도: 생명을 파괴하는 거짓 목자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올 뿐이다.”(10절) 이 말은 단순한 도덕적 비난이 아니라, 신앙의 본질에 대한 경고다. 하느님의 백성을 지배와 폭력으로 다스리려는 사람들, 진리를 왜곡하여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거짓 지도자들이 바로 “도둑과 강도”다. 구약의 예언자 에제키엘은 이미 이렇게 탄식했다. “너희 목자들은 자신만 먹고 내 양 떼를 먹이지 않았다.”(에제 34,8) 이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은 새로운 목자, 곧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나는 나의 양 떼를 찾아내어 그들을 먹이리라.”(에제 34,11-15)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단지 좋은 모범이 아니라, 하느님 약속의 완성, 곧 하느님의 목자됨의 실현이시다.
4. “나는 생명을 주러 왔다.”: 풍요로운 생명, 파스카의 선물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10절)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생명은 단순한 육체적 생존이 아니라,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파스카 생명이다. 이는 세례와 성체성사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다. 성 이레네오는 이렇게 말한다. “살아 있는 인간이 하느님의 영광이며, 인간의 생명은 하느님을 보는 것이다.”(Adversus Haereses, IV,20,7) 이 생명은 십자가를 통해 주어진다. 양들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는 사랑(요한 10,11)이야말로 그리스도께서 여신 ‘문’의 진정한 의미다. 그 문은 피로 물들어 있으며, 사랑으로 열려 있다.
5. 참된 목자의 표징: 사랑 안의 순명
참된 목자는 자기 것이 아닌 양 떼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는 주님의 양을 “자신의 것처럼”이 아니라, “주님께 속한 존재로서” 돌본다. 사제 교령은 이렇게 가르친다. “사제는 그리스도의 목자적 사랑에 참여하며,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리스도의 힘으로,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봉사한다.”(14항) 그러므로 교회의 모든 사목직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참여하는 ‘대리직’이다. 이 사랑은 단순히 감정이 아니라, 양들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십자가적 사랑이다.
6. 성소 주일: “문으로 들어가는 목자를 보내주소서.”
오늘은 성소 주일이기도 하다. 교회는 이날, 모든 사제와 수도자,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신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마태 9,37-38) 주님은 지금도 젊은이들을 부르고 계시다. 그 부름은 두렵고 불확실해 보이지만, 그 문을 통과하는 이에게는 참된 자유와 기쁨이 기다리고 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권고한다. “만일 그대가 목자의 길을 두려워한다면,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그분께서는 먼저 가신 길을 우리에게 보이셨다. 그분 안에서 두려움은 사랑으로 변한다.”(Sermo 46,1)
7. 결론: 주님, 우리를 당신의 문으로 이끄소서.
부활하신 주님은 오늘도 말씀하신다.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을 것이다.”(9절) 이 문은 닫힌 문이 아니라, 사랑으로 우리를 기다리는 열린 문이다. 그리스도는 양 떼의 문이시며, 동시에 모든 목자가 통과해야 할 시험의 문이시다. 그 문은 진리와 사랑, 희생과 봉헌의 문이다. 오늘 우리는 그 문 앞에 서 있다. 주님께 나아가려는 모든 이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세상을 섬길 수 있도록, 특히 젊은이들이 기꺼이 ‘문으로 들어가는 목자’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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