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
“저는 정신력이 약해요. 계획대로 무엇을 해 본 적이 없어요. 늘 작심삼일로 끝나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정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비정상일까요? 비정상인 것 같으면서도 주변에 이런 사람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런데 뇌과학의 입장에서는 지극히 정상이라고 합니다. 뇌와 마음은 원래가 변화를 싫어하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순조롭게 해내는 경우가 특이하고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 “괜찮아. 나는 약한 인간이야.”라고 위로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하지만 그냥 위로만 하면 어떻게 될까요? 스트레스가 줄어들 수는 있겠지만, 자기 발전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게 됩니다. 따라서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정도는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좀 더 해 볼까?”
이런 말을 통해 새로운 힘을 얻게 되고 변화의 시작을 만들 수 있게 됩니다. 습관화의 원리는 ‘일단 움직여라.’라고 합니다. 몸이 먼저 행동하면 거기에 뇌가 열중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은 습관에 의해 형성됩니다. 그 비율이 자그마치 45%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생활도 일단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도, 묵상, 사랑의 실천 등도 일단 해 보는 것입니다. 안 된다고 하면 정말 안 됩니다. 뇌와 마음이 따라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말씀하십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다.”(요한 12,44.45)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는 것은 당신 말씀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세상을 향한 간절한 사랑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더구나 예수님께서는 단순한 예언자가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의 완벽한 대리자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보는 것은 곧 보이지 않는 하느님 아버지를 믿고 보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어둠의 세상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빛이 비치면 어둠이 물러나는 것처럼,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죄와 절망의 어둠에 머무르지 않고 생명의 빛 안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뜻을 잘 따르려 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세상의 뜻을 따르면서 주님께 대한 믿음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커다란 외침은 우리를 향한 절절한 사랑의 초대입니다. 우리를 구속하는 규칙이 아니라, 우리를 어둠에서 건져내어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는 동아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일단 주님 뜻을 따르도록 행동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인간은 입이 하나 귀가 둘이다. 이는 말하기보다 듣기를 두 배 더하라는 뜻이다(탈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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