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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5월 2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5-02 조회수 : 39

복음: 요한 14,7-14: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아버지와의 일치를 드러내시는 장면이다. 제자들은 스승의 죽음이 다가옴을 느끼며 불안해했고, 필립보는 “주님, 저희에게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8절)라고 청한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단호히 대답하신다.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9절). 예수님은 단순한 하느님의 대리자가 아니라, 아버지의 완전한 모습이시다. 바오로 사도도 “그분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콜로 1,15)이라고 선포한다. 성 이레네오는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를 본다는 것은 곧 아들을 보는 것이며, 아들을 본다는 것은 곧 아버지를 아는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를 드러내는 계시자이시다.”(Adversus Haereses IV,6,6). 즉, 아들을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를 알 수 없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다.”(10절). 아버지와 아들은 본질적으로 동일하시면서도 구별된 위격으로서, 사랑의 관계, 곧 성령 안에서 하나를 이루신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삼위일체 신비를 묵상하며 이렇게 표현한다.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사랑하시고, 그 사랑이 바로 성령이시다. 그 사랑 안에서 세 위격은 하나이시다.”(De Trinitate XV,17,27). 이 사랑의 일치는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 우리 구원 안에서 체험되는 신비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을 하게 될 것이다.”(12절). 성 치릴로는 이를 이렇게 해석한다.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보다 더 큰 일을 하게 된다는 것은, 성령의 능력 안에서 온 세상을 복음화하고, 많은 이들을 새 생명으로 인도하는 것을 의미한다.”(In Ioannis Evangelium, lib. 10). 즉, 주님의 승천과 성령 강림 이후, 교회를 통하여 하느님의 일은 더 큰 차원에서 계속된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13절).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 이름으로”라는 조건이다. 예수님과 일치된 마음, 아버지의 뜻에 맞는 청원만이 이루어진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말한다.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단순히 그분의 이름을 입에 담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뜻과 합치되는 것을 구하는 것이다.”(In Ioannem Hom. 76,2).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단순히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이신 것처럼, 우리도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과 삶을 따를 때, 우리는 이미 아버지를 보고, 아버지와 일치하는 삶 안에 들어간다. 주님을 바라보며 아버지를 알고, 성령 안에서 사랑으로 하나 되는 삶을 살아가자. 그리고 기도를 통하여, 하느님께 참된 영광을 드리는 우리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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