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요한 15,9-11
기쁨은 인간을 고무시키고 치유시킵니다!
살레시오회 창립자 돈보스코의 아이들을 향한 사랑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는 자신이 설립한 발도코 오라토리오에서 한 가족으로 살아가던 아이들 앞에 설 때 마다 항상 이렇게 말했습니다.
“청소년 여러분, 여러분은 존재 자체로 제 기쁨입니다.
제게 있어 유일한 소망 한 가지는 여러분이 지상에서나 천상에서나 항상 기쁘게 지내는 것입니다.”
돈보스코의 아이들을 향한 각별한 사랑을 통해 우리를 향한 하느님 아버지의 극진한 사랑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이토록 부족하고 나약하며 흠결 투성이인 우리가 하느님께는 존재 자체로 기쁨이라니 이 얼마나 과분하고 은혜로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5,11)
성경 전반을 감싸고 있는 분위기는 기쁨과 환희입니다.
한 인간이 구원과 자유를 선물로 주시는 주님을 만나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 있을까요?
구원과 사랑이 선포되고 체험되는 곳에서는 기쁨이 샘솟습니다.
우리는 교회 전례 주년을 살아가면서 다양한 축제를 지냅니다.
예수님 관련 축일들, 성모님 축일들, 여러 성인의 축일...이런 축일들은 우리 그리스도교 교회 안에서 기쁨이 얼마나 본질적인 측면인지를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기쁨은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은총이며, 성령의 열매이며, 주님의 현존과 다스림이 가져다주는 행복입니다.
기쁨은 인간을 자유롭게 해주는 동시에 충만케 해줍니다.
인간을 고무시키고 치유시킵니다.
인간 스스로를 완성시켜나가게 합니다.
오늘 우리 공동체는 어떠한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공동체 안에 기쁨이 있습니까?
성원들은 충만한 기쁨으로 가득 차 있습니까?
그 기쁨은 서로를 지지하고 격려하며 생명력을 부여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존재 자체로 기쁨의 원천이 되고 있습니까?
“내 기쁨은 주님, 나는 그 길을 따라 주님께 달려가네.
기쁨은 주님께 다가갈 수 있도록 나를 돕기 때문에, 그 길은 아름답다네.
주님께서는 자비를 베푸시어 아무 주저 없이 내게 당신을 계시하시네.
그분은 친구처럼 자신을 낮추시네.
내가 그분께 기댈 수 있도록 그분은 나와 같은 존재 되시네.
그분은 나의 자비이시므로 그분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절망에 빠지지 않는다네.”(솔로몬의 찬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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