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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5월 8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5-08 조회수 : 53

복음: 요한 15,12-17 
 
내 슬픔을 반으로 줄여주는 마술사, 친구! 
 
 
오늘 복음을 묵상하던 중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이 땅에 내려오신 하느님께서 얼마나 파격적이신지!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 부르지 않는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요한 15,15)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지만 과거 종이나 노예 제도가 있었습니다.
주인은 종에게 전부였습니다.
생사여탈을 쥐고 있었으며 여차하면 마치 물건이나 동물처럼 매매나 양도할 수 있었습니다. 
 
노예 시장이 서면 노예가 필요한 사람은 매물로 나온 노예를 샅샅이 훑어봅니다.
마치 물건을 고르듯이 말입니다.
입도 벌려서 치아 상태가 양호한지? 옷을 벗겨서 몸 상태는 괜찮은지?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신분을 종에서 친구로 승격시켜주셨습니다.
죽을 운명을 지닌 비참한 존재에서 구세주 하느님의 친구로 영원한 생명을 확보한 위대한 존재로 우리 위치를 격상시켜주셨습니다. 
 
‘친구’란 단어처럼 듣기 좋고 편안한 단어가 다시 또 있을까요?
“친구란 내 기쁨을 두 배로, 내 슬픔을 반으로 줄여주는 마술사입니다.”
“마음이 통하는 친구를 하나 사귄다는 것은 또 하나의 세상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친구란 서로의 눈빛만 보아도 속마음을 다 알 수 있는 사람, 아무런 말없이 내 흐느낌을 오래도록 기다려주는 사람, 멀리 떨어져 다른 삶을 살아도 언제나 존재 자체로 큰 위로가 되는 사람입니다. 
 
친구란 존재, 정말 생각만 해도 든든하고 고마운 사람입니다.
때로 가족에게 하지 못할 말들도 친구이기에 속 시원히 털어놓습니다.
매일의 삶이 ‘연옥’의 연속이라 할지라도 친구가 있기에 그래도 견디며 살아갑니다.
이 냉혹한 세상 친구마저 없다면 과연 무슨 낙으로 살아가겠습니까? 
 
그런데 세월이 하도 팍팍해지다 보니 진정한 친구를 사귀기가 힘들어집니다.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나보다 더 나를 챙겨주는 친구, 내 슬픔을 자신의 등에 짊어지고 갈 친구를
찾기 힘들게 만듭니다.
사는 게 점점 더 외로워집니다.
‘이 세상에 오직 나밖에 없구나!’ 하면서 홀로 쓸쓸히 소주잔을 기울입니다. 
 
이런 우리들 앞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당신께서 친히 우리의 친구가 되어주시겠다고. 정말 놀라운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제자들을 향해 친구 먹자고 제안하신 예수님이 누구입니까? 
 
그분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인류 구원을 위해 이 세상에 파견하신 당신의 분신이자 외아들이십니다.
아니 하느님 아버지와 동일하신 분, 결국 하느님 아버지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친구 먹자고 하신 것은 결국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친구 먹자고 하신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자기 낮춤이며 한없는 겸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잘 나가는 유명인사 가운데 친구가 한 명 있다면 덩달아 어깨가 으쓱합니다.
그러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크게 자랑합니다.
“그거 알아? 모모 국회의원이 바로 내 초등학교 동창이야.”
“이번에 임명된 그 장관 있잖아? 나하고 소꿉장난 친구였어!”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그런 친구 두지 못한 것 하나도 섭섭할 일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 왕 중의 왕이신 예수님, 창조주 하느님께서 우리의 친구이기 때문입니다.
세례를 통해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 즉 하느님 아버지와 친구가 된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은총이며 감지덕지한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이거 보통 자랑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큰 자부심이 필요합니다.
구세주 예수님의 친구가 된 것에 대한 큰 자긍심을 지니며 살아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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