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15,26─16,4ㄱ
성령을 받으려면 변호인이 필요한 존재가 돼라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중략) 사람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내쫓을 것이다.
게다가 너희를 죽이는 자마다 하느님께 봉사한다고 생각할 때가 온다."
(요한 15,26-16,2)
찬미 예수님! 부활 제6주간 월요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참으로 모순되어 보이는 두 가지를 동시에 선언하십니다.
하나는 '진리의 영이신 보호자'를 보내주시겠다는 황홀한 약속이고, 다른 하나는 제자들이 회당에서 쫓겨나고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섬뜩한 박해의 예고입니다.
우리는 흔히 성령을 받으면 만사형통하고 세상 사람들에게도 칭송을 받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그런데 왜 진리의 영이 오시는 사건과 세상의 박해가 세트 메뉴처럼 묶여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우리가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진리를 주장하는 자'가 되어야만 성령이
필요해지기 때문입니다.
진리가 없으면 우리는 박해받을 일도 없습니다. 물론 성령도 없을 것입니다.
이 기막힌 영적 역학을 소름 끼치도록 정확하게 보여준 실제 방송 에피소드가 하나 있습니다.
2012년 SBS 방송 프로그램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2012)에 방영되었던 '50년째 산속 은둔 할아버지'의 사연입니다.
할아버지는 50년 전 세상에서 받은 끔찍한 상처 때문에 깊은 산속 동굴로 숨어들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을 극도로 불신한 그는 산짐승처럼 개 사료를 주워 먹으며 살고 있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제작진이 다가가 그를 문명 세계로 구출하려 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낡은 자아에 갇힌 세상을 향해 '그리스도의 구원'을 선포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제작진을 자신을 해치려는 적으로 간주하고 돌을 던지며 극렬하게 저항했습니다.
제작진의 진심 어린 말로는 도저히 닫힌 문을 열 수 없는 '박해'의 상황에 부딪힌 것입니다.
이때 제작진은 기가 막힌 묘안을 냅니다. 할아버지가 유일하게 마음을 열었던 옛 고향 친구들을 수소문해 산속으로 모셔 온 것입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젊은 시절 가장 좋아했다던
따뜻한 군고구마를 구워서 친구들 손에 들려 보냈습니다.
잔뜩 경계하던 할아버지는 친구들의 다정한 목소리를 듣고, 그들이 내미는 따뜻하고 달콤한
군고구마의 온기를 느끼자마자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기 시작했습니다.
군고구마의 온기가 할아버지의 얼어붙은 영혼의 빗장을 녹여버린 것입니다.
마침내 할아버지는 50년 만에 동굴 밖 세상으로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논리가 파생됩니다.
깊은 산속 동굴(가짜 세상) 밖으로 이끌어내려는 제작진이 '우리(그리스도인)'라면, 그들의 굳은 마음을 열게 만든 고향 친구와 군고구마가 바로
'진리의 영이신 성령'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성령을 뜻하는 그리스어 '파라클리토스(Paraclete)'는 곁에 불림을 받은 자, 즉 '변호인'을 뜻합니다.
제작진은 할아버지의 완고한 고집을 꺾고 진실을 증명해 줄 '변호인'이 절실하게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과 군고구마를 동원한 것입니다.
만약 제작진이 할아버지가 돌을 던질 때 "아유, 저렇게 고집을 피우는데 그냥 짐승처럼 살게
내버려 둡시다"라며 세상(할아버지의 고집)과 적당히 타협하고 철수해버렸다면 어땠을까요?
그들에게는 굳이 고향 친구를 수소문하고 군고구마를 구워가는 그 수고로운 '변호인'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와 완벽하게 똑같습니다. 파라클리토스이신 성령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이 사기꾼이 아니라 우주의 구세주이심을 세상의 법정에서 입증해내시는 하늘의 변호인이십니다.
우리가 세상 속으로 들어가 "예수님이 진리입니다!
돈과 쾌락이라는 동굴에서 나오십시오!" 라고 주장할 때, 세상은 우리의 주장을 거부하며 돌을 던집니다.
바로 그 치열한 영적 법정에서, 내 힘과 내 언변만으로는 저 세상을 꺾을 수 없음을 뼈저리게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파라클리토스(변호인)이신 성령을 애타게 부르게 됩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오시어, 군고구마처럼 거부할 수 없는 은총의 온기로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녹이시고 우리의 주장이 참 진리임을 변호해 주시는 것입니다.
반대로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직장에서, 이웃 사이에서, 세상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며 "너희가 믿는 돈도 좋고, 적당한 쾌락도 좋지"라며 세상과 둥글둥글하게 타협하며 산다면 어떻게 될까요?
세상은 우리에게 돌을 던지지 않습니다.
박해도 없습니다.
박해가 없으니 나를 방어하고 내 주장을 입증해 줄 '변호인(성령)'도 굳이 필요가 없습니다.
변호사는 법정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에게나 필요한 존재입니다.
아무하고도 싸우지 않고 모든 불의와 적당히 타협하며 소파에 누워 있는 사람에게 세상에서 가장 비싼 변호사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 절대적인 원리를 법학적, 사회적 법칙으로 아주 명확하게 보여주는 제도가 있습니다.
바로 '내부 고발자 보호 프로그램(Whistleblower Protection Program)'입니다.
국가나 거대 기업의 끔찍한 비리를 발견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그 비리를 덮어주고 조직과 타협하여 뇌물을 챙기기로 했다면, 그는 떵떵거리며 편안하게 살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양심을 걸고 그 거대한 어둠의 세력을 향해 진실을 폭로(증언)하기로 결심하는 순간, 거대 조직은 그를 죽이기 위해 맹렬한 박해를 시작합니다.
이때 국가는 이 정직한 증언자를 살리기 위해 최정예 요원들을 파견하여 그를 보호하고,
법정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최고급 변호인단을 무상으로 붙여줍니다.
증언을 했기에 목숨의 위협을 받았고, 위협을 받았기에 국가의 막강한 보호 시스템(변호인)이 가동되는 것입니다.
진리를 폭로하는 투신이 없으면, 변호인도 출동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 삶 속에서 파라클리토스이신 성령의 권능을 강렬하게 체험하고 계십니까?
만약 성령의 도우심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삶이 무미건조하다면, 그것은 하느님이 우리를 버리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세상의 썩은 가치관과 단 한 번도 부딪히지 않고, 너무나 평화롭게 타협하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매일 성당에 나와 "성령이여 오소서, 저를 변호해 주소서"라고 기도하면서, 정작 세상 문밖을 나가면 불의와 적당히 타협하고 복음을 단 한 번도 외치지 않아 핍박받을 일이 전혀 없는 안전한 삶을 살고 있다면 성령의 위로도 바랄 수 없게 됩니다.
교부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요한 복음 강해』에서 이렇게 단언하셨습니다.
"그대가 세상과 친하게 지낸다면 그대는 이미 진리의 변호인을 해고한 것이다.
파라클리토스 성령은 잠자는 자의 베개가 아니라, 진리를 위해 피 흘리는 투사의 검과 방패가 되기 위해 오시는 분이다."
(출처: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요한 복음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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