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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5월 15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5-15 조회수 : 29

복음: 요한 16,20-23: 그 기쁨은 아무도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제자들에게 산모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다. 아이를 낳는 순간 어머니는 큰 고통을 겪지만, 새 생명을 품에 안을 때 그 고통은 잊고 기쁨만 남게 된다. 제자들도 마찬가지다. 스승을 잃는 슬픔은 깊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다시 만나게 될 때 그 슬픔은 영원히 빼앗기지 않을 기쁨으로 변할 것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 구절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너희의 슬픔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그리고 너희의 기쁨은 그 누구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In Ioannis Evangelium Tractatus 101, 요한 16,20-22 의역) 아우구스티노는 이 기쁨이 단순히 감정적 즐거움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과의 친교에서 오는 영원한 기쁨이라고 강조한다. 세상의 기쁨은 변하지만,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역시 고통이 단순히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낳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주님께서는 ‘고통이 지나간 뒤에 기쁨이 올 것이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 고통 자체가 기쁨으로 변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Homiliae in Ioannem 79, 요한 16,20 의역) 즉, 십자가의 고통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은총 안에서 부활의 기쁨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교회는 이 진리를 성인들의 삶에서 확인한다. 성인들의 축일은 ‘죽음의 날’이 아니라 ‘천상 탄일(誕日)’로 불린다. 성 치프리아노는 이렇게 말한다. “그날은 ‘탄일’이라 불리는데, 이는 우리가 죽음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생명으로 태어나기 때문이다.”(Epistulae 58 의역) 우리가 겪는 고통과 희생은 단순히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새로운 생명, 곧 하느님의 생명으로 태어나게 하는 산통(産痛)과도 같다. 교리서도 이렇게 가르친다. “그리스도와 함께 고통을 받는 것은 그분의 구원 활동에 동참하는 것이며, 이는 새 생명을 낳는 은총의 통로가 된다.”(1521항 요약) 
 
우리 삶에도 수많은 고통이 있다. 그러나 그 고통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그것은 단순한 아픔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낳는 통로가 된다. 십자가의 어둠 속에서 부활의 빛을 기다린 제자들처럼, 우리도 그분께서 약속하신 기쁨을 희망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은 세상이 줄 수도, 빼앗을 수도 없는 기쁨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오늘 이렇게 기도하자. “주님, 저희의 고통을 부활의 기쁨으로 변화시켜 주시고, 그 기쁨을 영원히 지켜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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