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요한16,22ㄷ)
'나를 죽이자!'
오늘 복음(요한16,20-23ㄱ)은 '이별의 슬픔과 재회의 기쁨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울며 애통해 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요한16,20)
"해산할 때에 여자는 근심에 싸인다. 진통의 시간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 하나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으로 그 고통을 다 잊어버린다."(요한16,21)
'예수님의 때(kairos)'가 되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별의 슬픔'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다시 '재회의 기쁨'을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과 기쁨에 비유해서 말씀하십니다.
문맥상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별과 재회'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우리가 믿고 있는 '믿음의 본질'이자, 또한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살아야 할 '삶의 본질'입니다. 우리는 부활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 부활은 이제와 영원히 죽지 않는 부활입니다.
부활은 죽음 너머에 있습니다. 때문에 이제와 영원한 부활을 참으로 원한다면,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반드시 죽음의 길, 고통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저절로 주어지는 꽁짜 부활은 없습니다. 고진감래 라는 사자성어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죽음이 다해야 부활이 찾아옵니다.
'교만'을 죽여야 합니다.
'탐욕'을 죽여야 합니다.
'인색'을 죽여야 합니다.
'시기(질투)'를 죽여야 합니다.
'분노'를 죽여야 합니다.
'음색'을 죽여야 합니다.
'게으름(나태)'을 죽여야 합니다.
이 죽음에는 고통과 아픔이 따릅니다.
하지만 고통과 아픔 뒤에 이제와 영원한 부활이 있습니다.
나를 죽입시다!
내 안에 있는 육의 열매들을 죽입시다!
그래서 그 너머에 있는 부활과 참평화의 기쁨을 함께 누립시다!
(~1마카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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