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요한 17,11-19: 아버지의 말씀이 곧 진리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수난을 앞두고 드리신 “사제적 기도”의 두 번째 부분이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아버지께 돌아가시며, 남겨질 제자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신다. 그분의 기도에는 제자들에 대한 사랑과 그들을 통한 교회의 사명 전체가 담겨 있다.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키시어,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11절) 여기서 “이름”은 하느님의 현존과 권능을 뜻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지켜주셨듯이, 이제는 아버지께서 친히 그들을 보호해 달라고 청하신다. 제자들의 일치는 단순한 협력이나 동료애가 아니라, 삼위일체의 친교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치이다. 성 치프리아노는 교회의 일치를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교회를 어머니로 모시지 않는 이는,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실 수 없다.”(De unitate Ecclesiae 6) 교회의 일치는 곧 하느님과의 일치이며, 그 일치 안에서만 우리는 참된 보호와 생명을 누릴 수 있다.
“이들이 속으로 저의 기쁨을 충만히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13절) 이 기쁨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하나 되는 데서 오는 기쁨이다. 세상은 제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들은 미움 속에서도 기쁨을 누린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 구절을 이렇게 주석한다. “내 기쁨이 그들 안에서 충만하게 되기를, 곧 아들이 아버지 안에서 기뻐하는 그 기쁨이 그들 안에서도 충만하기를 원하셨다.”(In Ioannem Evangelium Tractatus 107, 요한 17,13-24 의역) 그리스도의 기쁨이란 아버지와의 친교 안에서 오는 것이며, 제자들도 이 기쁨을 나누도록 초대받았다.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14절)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큰 정체성은 바로 세상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고 하느님께 속한 이들이다. 그들은 세상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증언하는 누룩이 된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설명한다. “주님은 제자들을 세상에서 데려가 달라고 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세상에서 그들을 지켜 달라고 기도하셨다.”(Homilia in Ioannem 82, 요한 17,15 의역)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도록 파견된 사람이다. 신앙인은 세상에 파묻히지 않고, 세상을 새롭게 하는 존재로 부름을 받았다.
예수님의 기도의 절정은 바로 이 구절이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17절) 거룩함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과 은총을 통해 주어진다. 말씀 자체가 우리를 성화시키는 힘이다. 성 이레네오는 이렇게 가르친다. “말씀이 사람이 되신 분께서 친히 인간을 거룩하게 하신다.”(Adversus Haereses V,15 의역)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의 삶에서 말씀을 가까이하며, 그 말씀 안에서 거룩해져야 한다.
“아버지께서 저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저도 이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18절) 교회의 본질은 파견(missio)이다. 복음을 전하고, 사랑을 실천하고, 세상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증거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다. 교리서는 이렇게 말한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선교적이다. 교회가 파견되지 않는다면 교회일 수 없다.”(849-851항 요약)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뜻을 위해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치셨듯이, 우리도 복음을 전하는 삶 전체를 봉헌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를 위해 드리신 기도는 우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시려는 기도다. 제자들이 세상에 파견된 것처럼 우리도 파견된 사람들이다. 세상에서 하느님께 속한 이들로 살면서, 말씀 안에서 거룩해지고, 일치와 기쁨을 증거해야 한다. 오늘 하루,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의 기도로 지켜지고 있음을 기억하여야 한다. 그리고 말씀으로 날마다 성화되어, 세상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증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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