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요한 21,15-19: 내 어린양들을 잘 돌보아라.
오늘 복음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베드로와 나누신 대화로, 교회 사목의 본질과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의 의미를 드러낸다. 예수님께서는 세 번 부인한 베드로에게 세 번 사랑을 고백하게 하신다. 이는 과거의 약함을 용서하시고, 새로운 사명을 주시는 회복의 순간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설명한다. “세 번의 부인은 세 번의 사랑의 고백으로 씻겨졌다. 입은 죄를 지었지만, 같은 입이 다시 구원을 고백하였다.”(In Ioannis Evangelium Tractatus 123, 요한 21,15-17 의역) 우리의 상처와 죄도 주님 앞에서 사랑의 고백으로 회복된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세 번 같은 말씀을 하신다.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15.17절) 이는 단순한 부탁이 아니라, 목자의 사명을 위임하는 것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말한다. “그분은 그에게 단순히 사랑을 고백하게 한 것이 아니라, 사랑의 증거로 양들을 맡기셨다. 사랑한다면, 사랑의 증거로 양 떼를 돌보아야 한다.”(Homiliae in Ioannem 88, 요한 21,15-17 의역) 따라서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히 감정적 고백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교회를 돌보는 봉사로 나타나야 한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끌려가리라.”(18절)라고 하시며 그의 죽음을 예고하신다. 이는 십자가의 길이다. 성 예로니모는 이를 해설하며 이렇게 말한다. “베드로는 자신을 주님과 같이 십자가에 매달릴 자격이 없다 하여 거꾸로 십자가에 달리기를 원했다. 그는 이렇게 주님의 영광을 드러냈다.”(Commentarius in Matthaeum 초기 베드로 순교에 대한 전승 의역) 순교는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완전한 사랑의 표현이다.
교회 헌장은 이렇게 가르친다. “주 예수님께서는 시몬 베드로만을 특별히 임명하시어, 가시적이고 항구적이며 눈에 보이는 일치의 원리와 기초로 삼으셨다.”(18항 요약) 또한 교리서는 이렇게 가르친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교회의 목자로서의 임무를 주셨다. 이 임무는 교회의 일치와 선익을 위한 봉사이다.”(881항 의역) 교회의 목자직은 권위가 아니라, 봉사와 사랑에 뿌리내린 사명이다.
주님은 베드로에게만 물으시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묻고 계신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우리가 진정 주님을 사랑한다면, 그 사랑은 구체적인 봉사와 희생으로 드러나야 한다. 우리에게 맡겨진 “작은 양들”, 곧 가정과 공동체, 교회 안의 형제자매들을 돌보는 삶이 바로 주님께 대한 사랑의 증거이다. 주님께 대한 사랑은 말로만 그칠 수 없다. 그것은 봉사로, 희생으로, 때로는 고난과 순교로까지 이어진다. 베드로가 십자가를 통해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한 것처럼, 우리도 삶의 자리에서 주님을 사랑함으로써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존재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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