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마르 10,28-31: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베드로는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28절)라고 고백한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단순히 재산이나 직업을 포기하는 차원이 아니다. 더 본질적으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다. 성 베네딕토 규칙에서도 수도자는 “아무것도 그리스도보다 앞세우지 말라.”(Regula Benedicti)라고 가르친다. 결국, 제자가 된다는 것은 나의 뜻, 나의 소유, 나의 안전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을 우선으로 두는 삶이다.
예수님은 어제 복음에서 부자 청년이 재물 때문에 그분을 따르지 못했다고 말씀하셨다. 오늘은 그와 대조적으로 제자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른 모습을 보여 주신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말한다. “재물이란 소유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사용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그것을 올바르게 사용하지 못하면, 그 재물은 인간을 주인이 아니라, 노예로 전락시킨다.” 즉, 문제는 ‘가지고 있음’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이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용하면 축복이 되고, 집착하면 올무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29-30절)라고 약속하신다. 이 백 배의 보상은 단순히 물질적 배상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새로운 가족과 관계, 그리고 하느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뜻한다. 실제로 사도들은 모든 것을 버렸지만, 교회 안에서 수많은 형제자매를 얻었고, 복음을 전하며 참된 기쁨을 누렸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31절)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하느님 나라의 가치 역전, 곧 세상의 기준과 하느님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 준다. 세상은 가진 자, 힘 있는 자를 높이지만, 주님께서는 겸손하고 모든 것을 버린 자를 높이신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설명한다. “세상의 눈에 보잘것없는 자들이 하느님의 눈에는 위대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 자신을 버리고 하느님 안에서만 부유하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버렸는가? 여전히 내가 집착하는 ‘작은 부자 청년의 마음’은 없는가? 재물, 명예, 내 고집과 관념까지도 하느님보다 앞세우고 있지 않은지 성찰해야 한다. 버린다는 것은 단순한 손실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더 큰 선물로 채우시기 위한 여정이다. 주님께서 내 삶에 주신 은총과 재능, 시간, 물질을 이웃과 나누며 살아가는 것이 곧 백 배의 축복을 체험하는 길이다. 이 부르심에 응답하여, 하느님 나라의 참된 부자가 되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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