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의 종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 이르신 “당신께 닥칠 일들”, 곧 수난 죽음과 부활에 관한 세 번째 예고 말씀이며, 다른 두 예고에 비해 비교적 길고 상세한 말씀으로 열립니다. 이 예고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은, 세 번째 예고이니 잘 알고 있다는 듯, 무덤덤해 보입니다. 아니, 무덤덤한 정도가 아니라, 관심이 전혀 다른 데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그들의 관심사는 스승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의 고통을 통해 드러나고 펼쳐질 지상 왕국에 관한 것, 그 왕국에서 각자가 차지하고 누릴 사회적 지위에 온통 쏠려 있습니다.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의 요청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예수님은, 야고보와 요한이 하나의 세속적인 자리로 취급하고서 올린 ‘오른쪽과 왼쪽 자리’에 관한 청에 대하여, 그 진정한 의미와 수용에 관한 질문으로 답을 주십니다.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그것은 결국 예수님이 “마시려는 잔”, 곧 그분의 수난과 십자가상 죽음을 받아들일 때 가능한 자리로 선포됩니다. 구약성경에서 자주 고통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쓰이는 ‘잔’에(이사 51,17-22; 예레 25,15; 에제 23.31-34) ‘세례’라는 표현이 덧붙여지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시련에 처한 사람, 특별한 경우에는 순교를 각오해야 하는 사람이 겪어야 하는 고통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이 표현을 통해서 당신이, 당신을 이어 제자들이 마주해야 하고 수용해야 하는 운명이 어떠한 것인지를 밝혀주십니다.
야고보와 요한, 이 두 제자의 청에 불편한 마음을 숨기지 않음으로써 동일한 야심을 품고 있던 제자들을 향해, 예수님은 애정 어린 가르침을 펼치십니다. 오늘 말씀의 근본적인 메시지가 이 가르침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유사한 말씀이 이어집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두 번째 말씀에서는 섬김의 대상이 ‘너희’가 아니라 ‘모든 이’로 확대되어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이미 사도들의 모임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이들이 섬겨나갈 교회공동체가 부상하고 있음을 눈여겨 볼 수 있습니다. 아무튼 섬김의 이유는 간단합니다. 제자는 스승을 따르는 사람이어야 하기에, 스승이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다면” 제자들도 마땅히 섬김의 삶을 그대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은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 한 생을 섬김의 삶으로 채워나가신 분들입니다. 사도들은 가끔 섬김을 받고 싶은 유혹이 들 때마다, 오늘 스승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죄송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더욱 열심히 종으로서의 길을 걸어가셨을 것입니다. 사실 사도 12,2에 따르면, 마르코 복음서가 기록된 시점에는 야고보 사도가 이미 순교한 상태였기에(44년경), 예수님의 질문에 야고보와 요한이 “할 수 있습니다” 한 답변은 역사적 사실로 입증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 사도들을 기초 삼아 세우신 교회에 우리를 불러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사도들처럼 교회 안은 물론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도 섬김의 삶을 드러내고 자랑하는, 뜻깊은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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