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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5월 28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5-28 조회수 : 52

복음: 마르 10,46-52: “제 눈을 뜨게 해주십시오.” 
 
바르티매오는 길가에 앉아 있던 눈먼 걸인이었다. 그는 단순한 개인이 아니라, 타락한 인류의 실존적 처지를 상징한다. 죄와 무지로 인해 하느님을 보지 못하고 길가에 방치된 채 앉아 있는 모습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바르티매오의 눈먼 상태는 영혼의 눈이 가려져 진리를 보지 못하는 인간을 상징한다.”라고 말한다. 즉, 그는 우리 자신이며, 회개 이전의 인류 전체이다. 
 
바르티매오는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 고백한다. 이는 단순한 치유자가 아니라, 메시아에 대한 신앙 고백이다. 군중은 그를 꾸짖지만, 그는 더 크게 외친다. 여기서 우리는 깨닫는다. 믿음은 군중의 시선이나 세상의 방해를 넘어서는 끈질긴 외침이다. 은총은 소극적 기다림이 아니라, 주님을 향한 용기 있는 부르짖음을 요구한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말한다. “믿음은 단순히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아는 것이 아니라, 군중이 막아도 그분께 나아가려는 용기 있는 행위다.” 
 
바르티매오는 예수님을 향해 달려가면서 겉옷을 벗어 던졌다. 이는 단순한 동작이 아니라, 옛 인간을 버리는 상징적 행위다.(에페 4,22 참조) 그가 의지하던 마지막 재산, 삶의 안전망까지 버리고, 전적으로 예수님께 자신을 맡긴 것이다. 이는 제자가 되려면 반드시 “버려야 할 것”이 있음을 알려준다. 단순히 재물만이 아니라, 우리의 교만, 집착, 과거의 상처와 죄의 습관까지도 내려놓아야 한다. 
 
예수님의 질문에 바르티매오는 구체적으로 대답한다.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51절) 이 기도 안에는 구체적인 믿음과 간절한 갈망이 담겨 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기도 역시 모호하거나 추상적인 바람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인격적인 간청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은 바르티매오를 치유하시며, 단순히 육체의 시력 회복만이 아니라, 영혼의 구원을 선언하신다. 그리고 그는 곧바로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섰다.”(52절) 이것이 참된 제자직의 모습이다. 은총은 단순한 치유에서 끝나지 않고, 주님을 따르는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회칙, “Spe Salvi”(희망으로 구원된 우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신앙은 단순한 시각 회복이 아니라, 세상을 그리스도의 빛 안에서 새롭게 보는 것이다.”(31항 요약) 
 
우리는 군중의 목소리보다 주님의 부르심에 귀 기울이는가? 신앙의 여정에서 버리지 못한 ‘겉옷’, 곧 나를 가로막는 집착과 죄악은 무엇인가? 은총을 받았다면, 그 자리에서 멈추지 않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오늘 복음은 단순한 치유 이야기가 아니라, 제자직의 여정을 비추는 영적 거울이다. 바르티매오처럼 끈질기게 외치고, 옛 옷을 벗어 던지고, 주님을 따르는 길이 곧 우리에게 주어진 성소다. 
 
바르티매오는 길가에 앉아 있던 눈먼 걸인이었다. 그는 단순한 개인이 아니라, 타락한 인류의 실존적 처지를 상징한다. 죄와 무지로 인해 하느님을 보지 못하고 길가에 방치된 채 앉아 있는 모습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바르티매오의 눈먼 상태는 영혼의 눈이 가려져 진리를 보지 못하는 인간을 상징한다.”라고 말한다. 즉, 그는 우리 자신이며, 회개 이전의 인류 전체이다. 
 
바르티매오는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 고백한다. 이는 단순한 치유자가 아니라, 메시아에 대한 신앙 고백이다. 군중은 그를 꾸짖지만, 그는 더 크게 외친다. 여기서 우리는 깨닫는다. 믿음은 군중의 시선이나 세상의 방해를 넘어서는 끈질긴 외침이다. 은총은 소극적 기다림이 아니라, 주님을 향한 용기 있는 부르짖음을 요구한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말한다. “믿음은 단순히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아는 것이 아니라, 군중이 막아도 그분께 나아가려는 용기 있는 행위다.” 
 
바르티매오는 예수님을 향해 달려가면서 겉옷을 벗어 던졌다. 이는 단순한 동작이 아니라, 옛 인간을 버리는 상징적 행위다.(에페 4,22 참조) 그가 의지하던 마지막 재산, 삶의 안전망까지 버리고, 전적으로 예수님께 자신을 맡긴 것이다. 이는 제자가 되려면 반드시 “버려야 할 것”이 있음을 알려준다. 단순히 재물만이 아니라, 우리의 교만, 집착, 과거의 상처와 죄의 습관까지도 내려놓아야 한다. 
 
예수님의 질문에 바르티매오는 구체적으로 대답한다.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51절) 이 기도 안에는 구체적인 믿음과 간절한 갈망이 담겨 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기도 역시 모호하거나 추상적인 바람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인격적인 간청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은 바르티매오를 치유하시며, 단순히 육체의 시력 회복만이 아니라, 영혼의 구원을 선언하신다. 그리고 그는 곧바로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섰다.”(52절) 이것이 참된 제자직의 모습이다. 은총은 단순한 치유에서 끝나지 않고, 주님을 따르는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회칙, “Spe Salvi”(희망으로 구원된 우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신앙은 단순한 시각 회복이 아니라, 세상을 그리스도의 빛 안에서 새롭게 보는 것이다.”(31항 요약) 
 
우리는 군중의 목소리보다 주님의 부르심에 귀 기울이는가? 신앙의 여정에서 버리지 못한 ‘겉옷’, 곧 나를 가로막는 집착과 죄악은 무엇인가? 은총을 받았다면, 그 자리에서 멈추지 않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오늘 복음은 단순한 치유 이야기가 아니라, 제자직의 여정을 비추는 영적 거울이다. 바르티매오처럼 끈질기게 외치고, 옛 옷을 벗어 던지고, 주님을 따르는 길이 곧 우리에게 주어진 성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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