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요한 12,24-26: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1. 한국 교회의 첫 열매,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오늘 교회는 한국 천주교회의 첫 순교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4위를 기린다. 윤지충은 조상 제사와 신주를 불사르라는 교회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유교적 사회의 압박 속에서도 신앙을 선택한 용기 있는 증인이었다. 이 사건은 조선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고, 결국 그는 1791년 참수형을 받아 우리나라의 첫 순교자가 되었다. 그분과 동료 순교자들은 단순히 목숨을 빼앗긴 이들이 아니라, 복음의 말씀처럼 한 알의 밀알로 땅에 떨어져 한국 교회라는 풍성한 신앙의 열매를 맺게 하였다. 테르툴리아노는 이렇게 말했다. “순교자들의 피는 그리스도인들의 씨앗이다.”(Apologeticus, 50,13) 이 말씀은 한국 교회의 역사 안에서 그대로 이루어졌다. 순교자들의 피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 신앙 공동체의 뿌리가 되었다.
2. 밀알의 신비: 죽음을 통한 열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24절) 순교자들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그들의 희생은 파괴가 아니라 풍요로운 결실이 되었고, 그 결실이 바로 오늘 한국 교회의 신앙이다.
성 이레네오는 이렇게 가르친다. “살아 있는 인간이 하느님의 영광이며, 인간의 생명은 하느님을 보는 것이다.”(Adversus Haereses, IV,20,7) 순교자들은 육신은 파괴되었으나, 하느님을 향한 믿음 안에서 영원히 살아 있다. 그들의 삶과 죽음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증언이 되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도 순교를 이렇게 설명한다. “순교자는 죽음에서 패배하지 않고, 죽음을 통해 하늘 나라의 월계관을 얻는다.”(In Epist. ad Hebr. hom. 의역)
3. 자기 목숨을 잃고 얻는 길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25절) 이 말씀은 단순히 육체적 죽음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중심적 욕망을 버리고,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내어 맡기는 것이 참된 생명으로 가는 길임을 가르친다. 윤지충과 동료 순교자들은 세상의 안락과 가족, 심지어 목숨까지 내려놓음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선택하였다. 교회 헌장은 이렇게 가르친다. “순교는 가장 큰 사랑의 증거이다. 제자는 스승을 따르며, 스승이 죽기까지 충실하셨던 것처럼, 순교자들도 죽기까지 충실하다.”(42항 의역)
4. 오늘의 순교 정신
오늘 우리에게 순교 정신은 단순히 죽음을 맞이하는 용기가 아니다. 그것은 일상에서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이다. 가정 안에서 서로 용서하고 인내하며 자신을 버리는 것, 사회 안에서 물질주의와 불의 앞에서 신앙과 정의를 증언하는 것, 교회 공동체 안에서 봉사와 희생으로 형제를 섬기는 것이다.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한국 순교자들을 기리며 이렇게 말했다. “순교자들의 신앙은 한국 교회의 참된 보화이며, 이 신앙의 불씨는 오늘날에도 타오르고 있다.”(1984년 한국 순교 성인 시성 강론 중 요약)
5. 맺음말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은 한국 교회의 “밀알”이 되어, 피 흘림으로 오늘 우리의 신앙 공동체를 열매 맺게 하였다. 오늘 우리는 그분들의 증언 앞에서 자문해 보자. 나는 일상에서 나 자신을 버리고 하느님의 뜻에 응답하고 있는가? 나는 작은 희생과 봉헌을 통해 순교 정신을 살아가고 있는가? 이 거룩한 미사 안에서, 우리도 순교자들과 함께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삶을 봉헌하는 참된 제물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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