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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5월 31일 _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5-31 조회수 : 6

복음: 요한 3,16-18: 외아들을 보내주신 하느님의 사랑 
 
1. 삼위일체의 신비: 구원의 중심에 계신 하느님
오늘 우리는 삼위일체 대축일을 지낸다. 교회가 이 축일을 지내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과 수난, 죽음과 부활이라는 구원의 모든 신비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사랑에서 비롯되었음을 고백하기 위함이다. 삼위일체의 하느님은 우리 구원의 주체이시며, 동시에 우리 안에 현존하시는 분이시다. 바오로 사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기를 빕니다.”(2코린 13,13)라고 인사한다. 이 인사는 단순한 축복의 말이 아니라, 하느님의 내적 생명과 인간의 구원 역사 사이의 친밀한 관계를 드러내는 고백이다.
교리서는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심 신비는 삼위일체의 신비이다. 신앙의 모든 진리는 삼위일체에서 나오며, 그 삼위일체를 향해 나아간다.”(234항) 삼위일체는 단지 하느님의 존재 방식에 관한 신비가 아니라, 우리가 그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하는 실재의 중심이다.(사도 17,28 참조) 우리의 몸은 “성령이 계시는 궁전”(1코린 6,19)이며, 삼위일체의 내적 사랑이 우리 안에 머무른다. 
 
2. 하느님 아버지: 사랑으로 외아들을 내어주신 분
요한 복음은 이렇게 선언한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셨다.”(16절) 여기서 ‘내주셨다.’는 말은 단순히 ‘보내셨다.’는 뜻이 아니라, ‘넘겨주셨다, 죽게 하셨다.’는 깊은 의미를 지닌다.(로마 8,32 참조) 곧 아버지께서는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당신 아들을 사랑 안에서 내어주신 분이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 구절을 묵상하며 이렇게 고백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죽게 하셨다기보다, 우리의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그 아들을 우리 손에 맡기셨다. 그분의 죽음 안에 우리의 생명이 있다.”(Tractatus in Ioannem, 12,12) 이처럼 삼위일체의 첫 번째 신비는 하느님 아버지의 절대적인 사랑이다. 아버지는 단죄가 아니라, 구원을 원하시며(17절), 그분의 심판은 항상 사랑의 정의, 곧 ‘생명을 위한 심판’(요한 12,47)이 된다. 
 
3. 하느님 아들: 사랑의 얼굴이신 예수 그리스도
아들은 아버지 사랑의 선물이며, 동시에 그 사랑의 계시이시다. 성 아타나시오는 이렇게 가르친다. “아들은 아버지의 본질로부터 나셨으며, 아버지를 드러내시는 살아 있는 말씀이다. 아들을 본 이는 아버지를 본 것이다.”(Oratio contra Arianos, I, 20)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사랑을 드러내시는 살아 있는 얼굴로서, 세상 속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하게 하신다. 그분 안에서 하느님은 더 이상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 속으로 들어오신 분, 우리의 고통과 죽음에 참여하시는 분이 되셨다. 교리서는 이렇게 밝힌다. “성자는 인간을 하느님께 이끌고, 하느님을 인간에게 드러내신다.”(240항)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삼위일체의 사랑이 가장 완전하게 드러난 자리이며, 그곳에서 우리는 “사랑이신 하느님”(1요한 4,8)의 실체를 본다. 
 
4. 하느님 성령: 사랑으로 하나 되게 하시는 분
성령께서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영원한 사랑의 관계이시며, 동시에 우리를 그 사랑 안으로 이끄시는 분이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말한다.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이시다. 그 사랑이 우리 안에 부어졌을 때, 우리는 하느님과 일치한다.”(De Trinitate, XV,17,31)
성령의 친교는 단지 개인적인 신심의 차원이 아니라, 공동체의 일치와 사랑의 원리다. 그분 안에서 교회는 하나 되고, 신자들은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을 실현할 수 있다. 따라서 삼위일체는 단순한 교의가 아니라, 삶의 모델이다. 교리서는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삼위일체는 모든 인간 공동체가 닮아야 할 최고의 모범이다. 각 사람은 자신이 다르면서도 사랑 안에서 일치할 수 있다.”(1878항) 
 
5. 삼위일체의 사랑 안에서 사는 삶
프랑스 신학자 이브 드 몽슈이유(Y. de Montcheuil)는 말한다. “교회는 삼위일체의 교회이다. 교회는 삼위일체의 영원한 사랑의 계획이 성취되는 곳이다.” 삼위일체의 삶은 사랑의 순환 속에 있는 관계의 삶이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을 주시고, 아들은 아버지께 자신을 내어드리며, 성령은 그 사랑의 흐름 안에서 모든 이를 하나로 묶는다. 우리의 가정과 공동체도 이러한 ‘삼위일체적 사랑의 구조’를 닮아야 한다.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면서도 사랑으로 하나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삼위일체의 삶을 이 세상 안에 드러내는 길이다. 
 
6. 결론: 삼위일체의 삶에 참여하도록 부름을 받은 우리
우리는 세례로써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새로 태어났다.(마태 28,19) 따라서 우리의 신앙생활 전체는 삼위일체의 신비 안에 머무는 삶이다. 이 신비를 믿고 고백하며, 그 사랑 안에 살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이자, 삼위일체의 살아 있는 성전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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