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마태 5,17-19: 새로운 정신과 옛 율법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를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17절)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단순히 과거의 율법을 존중한다는 차원을 넘어, 그 율법 안에 담긴 하느님의 구원 의지를 당신의 삶과 죽음, 부활을 통하여 충만히 드러내셨음을 뜻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한다. “율법은 은총의 도래를 예고하고, 은총은 율법을 완성한다. 율법은 마치 교사처럼 우리를 그리스도께 이끌고,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은 참된 의미를 얻게 된다.”(Contra Faustum, 19,7 요약) 즉, 율법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나아가기 위한 길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이 길을 따라오신 이들을 은총 안에서 충만히 채워 주신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작은 계명조차 소홀히 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주석하면서, “작은 것에 충실한 사람은 큰 것에서도 충실하다. 그러나 작은 것을 무시하는 사람은 결국 큰 계명도 가볍게 여길 위험이 있다.”(Hom. in Matth. 16 요약)라고 경고한다. 작은 계명 안에도 하늘 나라의 비밀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 역시 이와 일치한다. 교회 헌장은 이렇게 가르친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 안에서 율법을 완성하시어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로 해방시키셨다. 그러나 그분의 제자들은 계명을 무시할 수 없고, 오히려 사랑 안에서 계명을 지켜야 한다.”(40, 42항 참조)
율법은 억압을 위한 족쇄가 아니라, 사랑을 가르치고 공동체를 보호하는 하느님의 선물이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율법의 외적 준수만으로는 부족하며, 그 내적 정신, 곧 사랑과 자비를 살아내라고 하신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작은 계명 안에서도 하느님의 나라가 드러난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소홀히 여기는 작은 친절, 작은 희생, 작은 순종이야말로 하느님 나라를 여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성 베네딕토 규칙서의 첫머리에서 말하듯, “작은 시작이라도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점차 완전함에 이른다.”(Prol. RB 요약) 우리는 작은 계명을 충실히 지킴으로써, 하느님의 크신 은총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율법은 폐지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는 것이며, 작은 계명도 하느님 나라를 담고 있기에 결코 소홀히 여길 수 없다. 교부들은 작은 것의 충실함이 큰 것의 충실로 이어진다고 가르쳤다. 교회의 가르침은 율법의 완성은 사랑이며,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가능함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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